by 고정희 | 2018-11월-13
정원 왕국의 칼 대제, 푀르스터를 만나다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도서출판 나무도시
칼 푀르스터 지음 / 고정희 옮기고 엮음(편역)
304면 / 무선제본 / 2도 / 신국판 / 15,000원
ISBN 978-89-94452-23-4 03520 / 2013년 11월 25일 출간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꽃과 정원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독일 정원의 아버지’ 칼 푀르스터,
그의 일대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책은……
이 책은 “꽃의 제왕, 정원 왕국의 칼 대제,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1874~1970)가 생전에 썼던 27권의 책과 수백 편의 에세이, 수만 통의 편지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글을 선별하여 엮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의 사후에 미망인과 친지들이 뜻을 모아 그의 삶을 재구성하여 8년 만에 펴낸 책으로, 칼 푀르스터가 만 15세에 정원사 교육을 받기 시작하며 쓴 편지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인 96세에 쓴 글과 메모까지 긴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시기상으로 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글들이다. 그가 개발한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에 맞춰 그의 삶을 일곱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에 썼던 글과 편지를 실었다.
독일 역사 중에서 가장 파란이 많았던 격동의 세월을 보낸 칼 푀르스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정원을 가꾸고 정원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관된 삶을 살았다. 혼란을 피해 정원으로 숨어들었던 것이 아니라, 꽃의 아름다움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찾을 수 있다는 독특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신념을 평생 복음처럼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정원을 ‘처방’했다. 이 책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숙근초 육종을 포기하지 않고, 구술을 통해 새로운 정원 책을 집필한 정원형 인간의 구십 평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일곱 계절의 정원’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동안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가능하면 지구 전체를, 적어도 독일 땅 전체를 꽃으로 채우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소망이 투사되어 있다.
본문 중에서……
보르님 정원이라고 하면 대개는 이 선큰정원을 말한다. 사방에 마련된 계단을 따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문득 별천지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저 내 눈앞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이 꽃으로 둘러싸여 꽃 속에 들어앉은 형국이 되니 결국 세상 자체가 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선 꽃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마치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존재하여 그 별빛을 통해서 우주가 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듯, 지상에서는 나와 하늘, 즉 나와 빛의 근원 사이에 수없이 많은 꽃들이 존재하여 이 꽃들을 통해 세상에 빛이 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는 등식을 만드는 것이 칼 푀르스터의 의도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빛에 대해 유난히 민감하다는 점을 여러 대목에서 느낄 수 있다. 심지어 그는 빛과 색이 아름다운 생명으로 변신하여 나타난 ‘기적의 존재’가 꽃이라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선큰정원을 움푹 팬 커다란 방주로 여기고 하늘을 덮개로 파악한다면 선큰정원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세상이 되는 셈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물론 기적의 존재인 꽃들이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순간 인간들도 꽃이 되어 버린다. 꽃물이 들고 꽃향기가 배어 스스로 아름다워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세상에 다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도 꽃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칼 푀르스터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였으며 이렇게 세상을 꽃으로 채워 사람들에게 꽃물을 들이고 꽃향기에 적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이 하늘에서 받은 사명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_ 25쪽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숙근초들을 배식해 놓은 사례가 아직 드물다. 게다가 숙근초의 속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아직 많은 사람들이 겨울에도 나무처럼 바깥에서 월동시킬 수 있는 꽃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직 일년초와 반숙근초 등이 어지럽게 섞여 있어 꽃의 유형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어렵다. 나약한 구식 초화들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숙근초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점 많고 나약한 구식 초화들에서 비롯된 꽃에 대한 선입견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은 그동안의 노력에 의해 이미 극복된 지 오래이다. 물론 요즘에 와서 이 자연의 보물들이 보여주는 묘기에 대한 인식이 해마다 조금씩 커가고 있는 건 기쁜 일이다. 특히 정원 애호가들 세계에서 숙근초의 존재가 서서히 인지되어 가고 있다. 숙근초의 세계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나무와도 다르고 일년초와도 다르다. 그들은 마치 사람과 영혼의 교감을 이루겠다는 듯 다가오는 존재들이다. 봄에 싹이 터서 성장하고 꽃피고 스러졌다가 다시 깨어남을 반복하는 건 숙근초밖에 없다. 나무들은 겨울에도 꿋꿋하게 서 있지만 숙근초는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봄에 다시 싹이 트는 것이다. 연약해 보이지만 강건하고, 피로하게 시들었다가 소년의 신선함으로 다시 태어난다. 숙근초들이 보여주는 영웅적이고 열정적인 생명력과 생장성, 기적과 같은 적응력을 다른 식물 유형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원예가들이 내세우는 미적 기준을 이들보다 더 잘 맞춰주는 식물도 없다. 숙근초에겐 정원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원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별난 능력이 내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식물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비밀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들이다. 앞으로 공원과 정원에 이 보물들이 확실히 자리 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한편 숙근초를 통해 정원뿐 아니라 자연 경관에 대한 이해도 심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_ 115쪽
지은이 _ 칼 푀르스터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는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여 년 동안 포츠담 보르님에 머물며 숙근초 육성과 전시정원 조성, 글쓰기에 집중하여 총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었고 27권의 책을 집필했다.
정원 왕국의 칼 대제, 꽃의 제왕,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새로운 정원 문화의 확산이었다. 재배원에서 직접 육종한 숙근초들을 보급함과 동시에 글과 강연을 통해 이들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고, 재배원 부지에 자택을 짓고 전시정원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개방하였다. 정원사가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자신이 재배한 꽃을 바로 정원에 심어 자라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 역시 전례가 없었다. 새로운 꽃들의 육종, 그의 글과 사진 그리고 ‘실물’을 볼 수 있는 정원이 삼박자가 되어 정원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의 무대가 된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장이자 교육의 장소였으며 칼 푀르스터 자신에겐 연구소였다.
또한 칼 푀르스터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을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곱 계절의 정원이란 꽃뿐 아니라 억새나 수크령 같은 벼과식물부터 고사리까지, 그리고 당연히 꽃피는 수목들을 조합하여 초봄부터 늦가을, 겨울까지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각 계절마다 두어 가지 꽃을 심어 놓고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곱 번이건 칠백 번이건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곱 계절의 정원’은 ‘세상이 다 꽃으로 채워지는 그날’과 같은 뜻의 정원 프로그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칼 푀르스터의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옮기고 엮은이 _ 고정희
“칼 푀르스터 선생과 여러 달 씨름을 하다 보니 마치 그의 영혼 속에 허락 없이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오래 전에 발표되어 널리 알려진 글들이고 예전에도 여러 번 읽었던 글들인데 지금까지는 늘 건성으로 읽었었나 보다. 번역을 하다 보니 그의 숨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해독이 안 되는 글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슬쩍 넘어갈 수도 책을 덮어버릴 수도 없으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고,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영혼이 아플 정도였다. 문득 지금까지 내 삶의 여정에서 벌어진 여러 ‘우연’들이 왜 나를 자꾸만 칼 푀르스터 쪽으로 몰아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과정 때 설계사무실 FPB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거기 소장이 칼 푀르스터 재단 회장이었던 것도 그렇고, 지도 교수님이 재단의 이사였고 두 분이 동시에 추천해서 나도 이사가 되어 버린 것도 그렇다. 외국인을. 어쩌자고……. 당황스러웠지만 영광이었다. 그리고 학위 논문을 쓸 때 칼 푀르스터와 이십 년을 같이 일했던 함머바허 여사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던 것, 푀르스터의 딸 마리안네와 친구가 되어 십여 년을 절친하게 지냈던 것까지. 그러면서도 칼 푀르스터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게 되면 너무 깊은 우물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지금껏 슬슬 외곽을 맴돌았었다. 그의 글을 옮기면서 그의 우물에 깊이 빠져보니 ‘은하수에서 커피를 마시는’ 한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영혼 전체가 햇빛이 화사한 정원이었다.“
차례……
프롤로그_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신비주의자
칼 푀르스터
꽃을 통해 보는 세상, 보르님 선큰정원
칼 푀르스터의 정원 신학
칼 푀르스터의 후예들
푀르스터 가의 사람들
행복한 가족
삼부자 이야기
푀르스터 가의 여인들
1장. 초봄, 내 고향 천문대
어린왕자
베를린 천문대
내 고향 천문대
제3의 존재
2장. 봄, 길을 떠나 전력질주하다
슈베린에서의 정원사 교육
젊은 날의 기록(1)
슈베린에서의 2년 반
젊은 날의 기록(2)
젊은 시절의 요양 기간
젊은 날의 기록(3)
10년 동안의 유럽 종단
젊은 날의 기록(4)
베를린 베스트엔드, 숙근초 재배를 시작하다
푀르스터의 세계로 입문하는 열쇠
판과 프시케
신과 자연
포츠담 보르님에서
월동이 잘되고 오래 사는 꽃피는 숙근초란 무엇인가
3장. 초여름, 미래의 꽃피는 정원
『미래의 꽃피는 정원』과 『데미안』
신세대 정원에서 생명을 찾은 월동식물들, 숙근초, 관목, 덩굴식물 개요
구시대 정원과 신시대의 정원이란 무엇인가
꽃병에 대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제비고깔 찬가
제비고깔과 고딕 성당
파란빛 시간들
칼 푀르스터와 겨울
겨울 간조와 만조
4장. 한여름, 떠나라 머물러라
모든 떠남은 떠날 만한 것이다
이태리의 4월
기이한 결혼서약
결혼서약
아내에게, 딸에게(1)
무신론자의 기독교관
아내에게, 딸에게(2)
5장. 가을, 침묵을 깬 행복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으나 전쟁이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노란 정원
꽃과 열매는 그대의 귀향을 기다린다
위험한 세상
2차 세계대전 중의 편지와 기록
칠순잔치를 치르고 보낸 감사편지
자연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그림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동방 박사”에 대하여
6장. 늦가을, 존재함을 영원히 감사하다
칼 푀르스터 동무!
풀협죽도를 모르고 사는 인생
풀협죽도가 필 때면
작은 숙근초부터 우주의 별까지
벼과식물, 정원에 진출하다
고목
존재함을 영원히 감사함
칼 푀르스터와의 인터뷰
자기성찰
정열적인 노년의 나날들
수만 통의 편지들
노년의 기록
7장. 겨울, 늘 푸른 삶 ‘비타 셈페어비렌스’
겨울, 새로운 계절의 시작
신비 체험
잊지 못한 여행의 멜로디
무한궤도
by 고정희 | 2018-11월-13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 – 칼 푀르스터의 정원을 가꾼 마리안네의 정원 일기

도서출판 나무도시
마리안네 푀르스터 지음 / 고정희 옮김
256면 / 무선제본 / 올컬러 / 신국판 / 15,000원
ISBN 978-89-94452-24-1 03520 / 2013년 11월 25일 출간
평생에 걸쳐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고
27권의 책을 집필한
‘정원 왕국의 대제’ 칼 푀르스터!
그와 마리안네가 100여 년 동안 가꾸고 일군
보르님 정원의 ‘일곱 계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책은…...
이 책은 “꽃의 황제, 정원 왕국의 칼 대제, 독일 정원의 아버지” 등으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의 외동딸 마리안네 푀르스터가 독일 포츠담에 있는 보르님 정원을 일곱 계절 동안 가꾸며 쓴 정원 일기다. 칼 푀르스터가 1912년 보르님 구(區)에 위치한 감자밭 수 헥타르를 구입해 처음 조성한 보르님 정원은 독일 정원 문화가 새롭게 퍼져나간 정원 학당이자 순례지였다. 칼 푀르스터는 이곳에서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었고, 보르님 정원을 전시정원으로 조성해 자신이 개발한 일곱 계절(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동안 꽃피는 정원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마리안네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보르님 정원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쓰여졌지만, 보르님 정원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정원 에세이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 평생 정원사이자 조경가로 일하며 한시도 꽃과 정원을 떠나지 않았던 마리안네 푀르스터의 식물과 정원을 대하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시선은 보르님 정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재치 있는 글은 자칫 정적이기 쉬운 정원 일기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정원 일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일러준다.
한편,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는 세계적인 정원 사진작가 게리 로저스와 마리안네의 사진은 보르님 정원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수많은 정원 식물과 일곱 계절 내내 우리의 오감을 충만하게 해주는 푀르스터의 전시정원 속으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본문 중에서……
마리안네 푀르스터는 1931년 1월 1일 포츠담 보르님의 자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밑에서 정원사 교육을 받고 몇 년 간 유럽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아버지 칼 푀르스터는 정원사가 갖추어야 할 소양과 교육 내용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5년간의 교육 후에 10년 이상 실무 경험을 쌓되 한 고장에 머물지 말고 방랑하며 견문과 학식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여러 유형의 자연 경관을 두루 접하고 연구해야 하며 각종 식물원과 재배원을 섭렵하여 폭넓은 실무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그 자신 역시 그렇게 살았었다.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후 그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은 벨기에의 조경가 르네 페셰르의 설계사무실이었다. 르네 페셰르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때는 이미 동서가 갈라졌던 시기였으므로 공산주의 치하의 포츠담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브뤼셀에서 눌러앉아 30년을 살았다. 물론 해마다 휴가 때 집을 다녀갔다. 일방통행이긴 했지만 동서독일은 왕래가 가능해서 서쪽에서 동쪽을 방문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통일이 된 후에야 완전히 귀향했다. 그리고 보르님 정원을 돌보며 제3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에 귀향한 후 백혈병을 얻어 2010년 3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리안네 푀르스터는 하루도 정원을 떠나지 않았다. 독일연방문화재청에서 이미 그녀 생전에 그녀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두었다. 후사가 없었으므로 그녀의 사후에 집과 정원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정원 관리는 포츠담 시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집은 ‘칼 푀르스터 박물관’으로 변모될 예정이어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결국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보르님 정원은 지금도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누구나 찾아갈 수 있게 늘 문이 열려 있다. 처음 조성할 때부터 정원 문화를 접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마련한 것이었으므로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다만 푀르스터 가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의 손길이 사라졌음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정원은 살아있는 존재라서 사랑을 먹고 산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구석구석 사랑이 미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정원 귀신들이 떠나간 자리가 느껴진다. _ 15쪽
“어, 이 정원이 아직도 있네요!” 통일이 된 후 서쪽에서 온 손님들이 이렇게 놀라곤 했다.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정원 애호가들도 동서로 나뉘었으므로 서쪽에 살던 사람들은 포츠담 보르님에 있는 칼 푀르스터 정원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원이 몇 년 된 것인가? 모든 것이 그 당시 그대로인가? 아버지가 육종한 식물들이 여전히 심겨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 옛날의 흑백사진으로 역사를 설명하고 컬러사진을 새로 찍어 현황을 알리고자 한다. 또한 도면과 정원의 각 부분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중략… 이 책을 쓰면서 지금은 나의 정원이 된 아버지의 정원을 새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엔 당연하던 것들이 새삼스러워졌고 다른 사람들 눈엔 어떻게 비칠지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물론 전보다 훨씬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어서 함께 일하는 정원사들이 힘겨워 하기도 하지만 정원이 내 가슴속에 보다 더 깊숙이 자리 잡은 것 같다. 독자들이 나의 이런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최근에 이런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이제 이 정원은 그대 아버지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대의 정원이지요. 사람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움도, 부족한 점도 모두 책임질 분은 이제 당신입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아버지께서 아주 오래 전에 공간을 만드셨고 그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생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의 과제였다고. _ 23쪽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장이자 교육의 장소였으며 칼 푀르스터 자신에겐 연구의 장소이기도 했다. 여기서 ‘일곱 계절의 정원’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숙근초뿐 아니라 벼과식물, 고사리, 상록관목들을 조합하여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늘 아름답고 변화하는 정원을 실험하였다. ‘항상 피어있는 정원’이란 모토 하에 계절별로 수많은 식물들을 조합하였으며, 특히 ‘겨울에도 아름다운 정원’이란 콘셉트가 여기서 탄생되었다. 또한 칼 푀르스터는 자신의 정원이 인근 주민들에게 편안한 가족 소풍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애썼다. “정원사란 직업이 가장 즐거운 이유 중의 하나는 식물과 정원에서 비롯된 기쁨이 사람을 만나는 기쁨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서로 대화 없이 무심코 지나치던 사람들이 정원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게 되었다. 식물이 점점 더 성장하고 더 아름다워지는 것과 비례하여 사람들 역시 더 크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칼 푀르스터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_ 34쪽
5월 초, 연못가 단풍나무가 잎을 가득 달고 있다. 황홀한 정경이다. 봄엔 빨간색, 여름엔 진녹색, 가을엔 날씨에 따라 구릿빛에서 황금색으로 변하는데, 해마다 조금씩 다른 색의 조화를 보이는 것이 정말 마술 같다. 올해 이 단풍나무가 꼭 81세가 된다. 1924년 빌헬름 샤크트 씨가 아버지 밑에서 일할 때 심은 것이다. 그 분은 나중에 뮌헨 식물원 원장이 된다. 처음 심었을 때 이 나무는 아주 작고 꼿꼿했었다. 양친께서 나무의 양지쪽에 ‘무리엘’ 조릿대를 심어 해를 가려주었다. 단풍나무는 겨울 햇빛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릿대가 너무 커지자 나무는 해를 따라 목을 길게 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게 되었는데 속사정을 모르는 많은 이들이 이 동양화 같은 모습에 반해 흉내를 내려고 한다. 지금 이 단풍나무는 장년에 접어들어 ‘지팡이’가 필요하게 되었다. 비바람이 불 때마다 내 시선은 우선 이 동양에서 온 노신사에게로 향한다. 정원박람회를 위해서 우리 정원을 복원할 때 ‘무리엘’ 조릿대 대신 우아한 오죽 ‘보리아나’로 바꿔 심었다. _ 71쪽
지은이 _ 마리안네 푀르스터
“꽃의 제왕, 정원 왕국의 칼 대제”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의 외동딸인 마리안네 푀르스터(1931~2010)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그 역시 평생 꽃과 정원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 칼 푀르스터의 숙근초 육종 및 재배원에서 정원사 교육을 받은 후, 브뤼셀의 르네 페셰르 설계사무실에서 30여 년간 일하며 조경가 및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1990년 독일로 귀국한 후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포츠담 보르님의 칼 푀르스터 정원을 돌보고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차례……
옮긴이의 글
책을 펴내며
보르님 정원의 어제와 오늘
정원의 탄생
정원의 주요 공간들
정원의 특징과 변천과정
정원의 재탄생
1. 초봄: 2월말에서 4월말까지
봄을 기다리며
부활절에 돋아난 첫 단풍잎
봄길에 시작된 꽃의 행렬
2. 봄: 4월말에서 6월초까지
봄 교향곡에 섞인 작은 북소리
구근들의 색의 잔치가 시작되다
선큰정원에 가득한 봄기운
모란, 슐레지엔에서 온 귀한 손님
볼프강이라 불린 금붕어
보르님 정원의 동물들
잘라줘야만 하는 것들
만병초 미인들
일찍 피는 장미나무들
꿈처럼 매일 변신하는 정원
색의 삼화음
이젠 여름이 와도 좋다
황제나팔꽃 작전
대형화분의 전통을 이어가다
3. 초여름: 6월초에서 6월말까지
장미는 언제 보아도 기쁘다
장미의 기사에 대하여
시심 가득한 신세대 장미 기사들
살비아의 전성시대
아버지의 비비추 사랑
4. 한여름: 6월말에서 8월말까지
언제나 환영, 정원 방문객들
한여름의 정원관리
8월은 선물이 가장 많은 달
노루오줌, 그늘에 가려진 보물
풀협죽도의 향기
파란 풀협죽도를 찾아서
연못, 늘 궁금한 곳
태양의 신부, 키가 너무 크지 않아야
5. 가을: 8월말에서 11월초까지
보르님 품종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다
두더지와 물밭쥐에 대해서
해마다 커지는 그늘
첫서리의 매력
새신랑 새색시 인사드립니다
가을정원의 프리마돈나들
가을의 마법
정원애호가들의 힘든 시간들
육종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6. 늦가을: 11월초에서 12월초까지
7. 겨울: 12월초에서 2월말까지
성탄절 장식 만들기
겨울잠
정원의 일곱 계절을 빛내주는 식물들
감사의 글
칼 푀르스터 연혁
by 고정희 | 2018-11월-13
성장으로부터의 해방 – 탈성장 사회로 가는 길
도서출판 나무도시
니코 페히 지음 / 고정희 옮김
152면 / 무선제본 / 1도 / 신국판 / 10,000원
ISBN 978-89-94452-25-8 03300 / 2015년 9월 14일 출간
자신이 그리는 느린 세상, 적게 가진 세상의 비전대로 살아가고 있는 저자는
승용차는 물론 텔레비전도 휴대폰도 없고, 평생 비행기는 딱 한 번 타 보았다.
그는 이것을 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에 비 소유를 포기라고 말한다면
이는 역으로 소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가 주장하는 탈성장 경제론은 풍요로운 사회의 모델을 해체하고 책임감 있는 경제 행위로 회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제는 과감히 성장의 플러그를 뽑아야 할 때다.
〚이 책은〛
한 주 동안 열심히 일하고 나면 자신에게 뭔가 상을 주고 싶어진다. 새 스마트폰은 어떨까? 아이패드는? 신형 텔레비전이 좋을까? 아차 하는 순간에 우리는 소비 욕구와 시간 결핍이라는 악순환에 빨려든다. 그뿐이 아니다. “더, 더”를 외치며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 파괴를 가속시킨다. 아직 우리는 성장이라는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대한 토론은 이미 시작되었고, 속도가 붙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니코 페히는 여기에 꼭 맞는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그는 녹색 성장은 신화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들은 녹색 성장과 지속가능한 소비야말로 현대인의 미덕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좋은 성장과 나쁜 성장 사이의 미세한 차이 따위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모두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탈성장 경제라는 그의 대안은 산업 생산 절차를 억제하고 지역의 자급자족 모델에 힘을 실어준다. 소박하지만 안정적이고 생태적이며 물질을 통한 자기구현이라는 어지럼증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라고 예언한다. 심지어 그는 비행기를 타고 모여야만 하는 기후정상회의도 환경보호를 위해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이 추구하는 바는 겸손하다. 부(富) 중심의 사회와 작별하는 것을 조금 쉽게 해 주기 위한 책이다. 만성 성장 중독 증세로 인해 이제 부를 좇는 사회의 모델은 구제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 부에 대한 중독 증세가 상당히 심각해졌다는 증표가 도처에 드러나고 있음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이 사실을 외면해 왔다. 해결책이 거의 보이지 않는 엄청난 국가 부채 현황에 직면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국가가 끊임없이 빚을 지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의 몇 퍼센트가 과연 가능했을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날로 고갈되어 가는 자원이다. _ 7~8쪽
이 책의 목적은 성장과 지속가능성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살피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세 가지 가설을 세우고 거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첫째, 성장 없이는 안정될 수 없는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광범위한 환경 파괴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효율성의 증가와 인간의 창의력으로 인해 그동안 수많은 물질적 성과를 이룩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는 현대 삶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 유형의 ‘탈경계 현상’을 근거로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소비 사회의 구성원들은 세 가지 관점에서 분수에 넘치게 살고 있다. 우선 자신의 능력 이상의 물건을 소유한다. 이 물건들은 현재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무시한다. 그 다음 자신의 신체적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며, 마지막으로 각자 속한 공간과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의 한계를 넘어선다. 둘째, 기술적 혁신을 통해서 경제 성장과 환경 파괴를 서로 분리하려는, 즉 경제는 성장시키고 환경 파괴는 감소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 확실하다. 오히려 환경을 더욱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탈성장 경제’라는 대안을 따른다면 어쩔 수 없이 산업 생산량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공급의 경제적 안정성을 촉진할 것이며,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행복감의 상승을 가져 올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극이 넘쳐나는 소비 사회에서 스스로를 분산시키며 살고 있다. 소비 사회는 우리의 자원 중에서 가장 한정된 것, 즉 시간을 좀먹는다. 풍요의 짐을 벗어버린다면 우리는 오히려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자아구현을 돈으로 사기 위해 쳇바퀴를 돌지 않아도 되므로 현기증도 없어질 것이다. 적은 것을 집중적으로 이용하고, 나날이 제공되는 각종 옵션들을 의연하게 무시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는 감소하고 행복감은 커질 것이다. 21세기를 책임 질 수 있는 사회 모델과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의 절제밖에 없다. 부는 우리의 삶을 자유롭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만든다. _ 10~11쪽
지금 소유하고 나중에 지불하기 원칙은 시간적 경계가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지금 당장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기 위해 미래라는 여분에서 가불해서 쓴다. 말하자면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소득을 미리 취하는 것이다. 오늘날 만연해 있는 부채증후군은 욕망과 조급함의 척도일 뿐 아니라 조직적인 무책임함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을 떠맡아야 할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부채를 먼 미래로 연기하는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삶과 그들의 가능성을 잔인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_ 18쪽
대체 경제 시스템에서 산업이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아래와 같은 결론이 얻어진다. – 부가가치의 생산 고리를 짧게 줄이고 창의적인 생계 경제 체제를 강화한다. – 근로 시간을 줄이고 근무 시간을 자유로이 운영할 수 있게 하면 자가 생산의 투자 요소 중 ‘시간’을 벌 수 있다. – 지역 업체로부터 자재를 납품받음으로써 원거리 공급 체인을 끊는다. – 지역 화폐 제도에 참여한다. – 지역 내에서 판매하거나 아니면 직판한다. – 재활용이 가능하고 수명이 길며 수리가 용이한 제품을 개발하여 이를 모듈화하고 참신한 디자인을 개발하여 도시에서의 생태적 자족이 용이토록 한다. – 업체는 제품 생산과 서비스 등을 넘어서 강좌와 연수 과정 등을 제공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제품을 스스로 관리하고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_ 123~124쪽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추가적으로 해야 하는 데에 익숙한 나머지 가장 간단한 원리를 간과하고 있다. 감축과 자기 절제라는 행위는 자본도 필요 없고 새로운 발명품도 필요치 않으며 정치적인 혁신도 요구되지 않는다는 매력이 있다. 아무 조건도 필요 없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오히려 절약할 수 있다. 가장 저렴하고 생태적인 항공 여행은 떠나지 않는 여행이다. 휴대폰, 텔레비전, 주택, 고속도로 그리고 농촌 보조금 등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 않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고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가장 쉬운 방법을 어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 전략들, 혁신적이지 않은 것들, 새로운 법을 제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것들은 뭔가 의심스럽다. 발전과 추가적인 자유만을 문제 해결법으로 인정함으로써 탈경계화를 또 다른 탈경계화로 응수해 온 지금까지의 경직된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_ 135쪽
물질적 풍요로움에서 해방되어 주당 20시간 일하고 자기 시간에 자가 생산을 할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래서 지금부터 미리 시작하고 싶을 정도로? 행복감이라는 것이 정의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대답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행복감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삶에 대한 기대치에 비추어 역으로 분석해 볼 수 있으며, 또한 개인에게 중요한 주변 환경 내에서 서로 나누어 갖는 의미를 척도로 삼을 수 있다. 이들을 우선 차치하고라도 예라고 대답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_ 136쪽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경제 성장의 당위성을 의심치 않는다. 심지어는 의무라고 믿고 있다. 물론 영원히 성장할 수는 없겠지만 그 한계가 어디이며 과연 언제 멈추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확고한 개념을 가지기는 어렵다. 각자 최소한 내 가계만은 영원토록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 때 페히 교수는 이제 성장의 짐을 벗어놓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도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믿고 싶다. 하지만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던 예수의 가르침보다 더 실천이 어려워 보인다. 번역하는 동안 자주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내 경우, 문명의 이기라고는 라디오밖에 몰랐던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 속한다. 그 땐 서울 밤하늘에 별이 참 많았다. 이어 전화가 들어오고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승용차, 컴퓨터, 휴대폰, 대충 이런 순서로 삶이 복잡해졌다. 같은 속도로 하늘의 별이 사라져갔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라디오만 있던 시절에 내가 과연 불행했던가? 묻고 또 물었다.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내 생애 중 소위 그 결핍의 시간이 가장 풍요로웠던 시절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_ 151쪽
〚지은이〛 니코 페히
2010년부터 올덴부르크 대학의 ‘생산과 환경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독일의 대표적인 성장비판론자 중 한 명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그리는 느린 세상, 적게 가진 세상의 비전대로 살아가고 있는 진짜배기다. 승용차는 물론 텔레비전도 휴대폰도 없고, 평생 비행기는 딱 한 번 타 보았다. 박사 과정 중 지도교수를 만나기 위해 끊었던 워싱턴행 티켓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발권이었다. 그는 이것을 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에 비 소유를 포기라고 말한다면 이는 역으로 소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설명한다. 현재 독일 생태경제학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ATTAC(국제금융관세연대)의 과학 자문도 맡고 있다. 그는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옮긴이〛 고정희
독일 베를린에서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조경과 환경의 양 분야에서 동분서주, 많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실 조경은 환경의 어머니다. 1970년대 중반, 조경에서 환경이 파생되어 나왔으니 이 두 분야는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현재 환경부 및 환경부 산하의 여러 연구기관들과 협업 중이다. 환경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의 환경 정책을 리뷰하여 기초자료를 만들거나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양국의 정치 제도에 제법 큰 차이가 있어 많은 해석과 해설이 필요하다.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아마도 양국 국민들의 환경 의식의 차이일 것이다. 적어도 환경과 기후보호 정책에서는 국민들이 선도하고 정치가들이 뒷북을 치며 따라가는 것이 독일의 특성이다.
〚차례〛
서문. 부의 황혼 – 더 큰 행복에 대한 전망?
1장. 분수에 넘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권리일까
2장. 발전이라는 환상 – 약탈로 얻어진 부
3장. 자유라는 환상 – 새로운 의존관계
4장. 탈동조화는 신화 – 녹색 성장은 동화(童話)
5장. 언제 충분하다 할 것인가 – 성장에 대한 압박과 성장을 부추기는 것들
6장.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 탈성장 경제 모델
결론. 우리는 아직 선택할 수 있다
by 고정희 | 2018-11월-13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
정원은 베르사유밖에 모르는 당신을 위한 100장면!
고정희 지음
페이지600쪽
도서출판 한숲
출간일2018년 5월 31일
ISB(S)NISBN 979-11-87511-13-7
03520 정가 ₩ 28,000
정원과 공원, 건축과 도시, 미술과 문학, 생태와 미학,
자연과 신화를 넘나드는 종횡무진 역사 탐험!
1959년 작 ‘시인의 정원’에서 출발하여 21세기 베를린과 코펜하겐,
기원전 그리스와 로마의 정원을 지그재그로 오가는
‘역사적 장면’들의 쉴 새 없는 끝말잇기
〚이 책은〛
역사를 서술할 때 대개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천지창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언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대에 도착할지 까마득해진다. 산 정상에서 출발하는 등산처럼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먼 과거로 돌아가 파라오의 무덤부터 파헤치는 역사적 고찰이 아니라 지금의 정원들을 둘러보고 이들이 파라오의 정원과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피고자 했다. 서양 정원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첫머리에 등장하는 ‘이집트 벽화’가 아니라 1959년에 만들어진 ‘시인의 정원’을 첫 장면에서 소개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유구한 조경의 역사를 100장면에 압축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1959년을 전후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원의 유전자를 찾아 역사 속을 지그재그로 탐험했고, 그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인물과 도시와 신화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현대 조경은 물론이고, 고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풍경화식 정원의 대표작도 등장하지만, 그보다는 각 시대마다 새로운 정원을 일궈낸 배후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다. 익히 잘 알려진 정원을 소개하는 자료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는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마치 탐정이 된 기분으로 역사의 뒤안길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 저자의 발품 덕분에 ‘정원과 공원, 건축과 도시, 미술과 문학, 생태와 미학, 자연과 신화’를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조경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
“처음 두 장면과 마지막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세 장면씩 묶어 소개했다. 마치 끝말잇기처럼 하나의 장면이 다음 장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각 묶음마다 부제를 달았다. 예를 들어 ‘조경의 상대성 이론(009~011장면)’, ‘헤라클레스의 모험(069~071장면)’, ‘이집트 유전자 찾기(075~077장면)’ 등이다. ‘헤라클레스의 모험’이나 ‘이집트 유전자 찾기’에서 ‘족보를 찾아가다보면 과거 언젠가 같은 조상으로부터 출발했음’이 분명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신화 속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를 휘둘러 괴물만 때려잡은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도시 건설과 바로크 정원의 이념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6세기 르네상스 정원, 18~19세기 풍경화식 정원 그리고 20세기 시인의 정원이나 파리 루브르 등 도처에서 이집트의 유전자가 확인되었다.”
〚본문 중에서〛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 뜻밖에 수다스러운 키케로를 만나 지체되었고 풍경화식 정원의 산실이었던 젠틀맨 클럽에 가보니 작곡가 헨델과 모차르트가 함께 있었다. 풍경화식 정원은 조경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야기가 지루해질 소지가 다분하여 걱정스러웠다. 그때부터 스캔들 거리를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풍경화식 정원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녀도 좋다고 생각했다. – 7쪽
그의 한창 시절은 1920년대였다.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건축가 중 하나였으며 이른바 ‘유선형 건축(Streamline Architecture)’의 대표자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포츠담에 있는 태양관측소 ‘아인슈타인 타워’다. 1919년부터 1922년 사이에 만들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개발할 당시 아인슈타인은 베를린 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었는데 베를린의 천문학자들에게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한번 검증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때 천문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던 프로인틀리히 교수는 멘델존과 친한 사이였다. 프로인틀리히 교수가 멘델존에게 상대성 이론을 검증하기에 적합한 태양관측소를 한 번 지어볼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아인슈타인 타워였다. 완성된 관측소를 보고 아인슈타인은 “건물이 상당히 유기적이네”라고 평했다고 한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뿐 아니라 ‘유기적인 건축’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낸 셈이다. – 54쪽
헤라클레스가 그로부터 약 2,200년 후, 1546년에 황금 사과를 들고 로마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가 뒷짐 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헤스페리데스 정원에서 가져온 황금 사과였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르네상스의 주인공들은 몹시 흥분했다. 만약에 지금 한반도 어디선가 전설 속 마고선녀가 복숭아를 들고 있는 고대의 석상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야단법석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걸 계기로 하여 도화원을 만들고 그 안에 마고선녀의 석상을 세우는 것이 유행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파르네세의 헤라클레스가 발견된 후 바로 그런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오랫동안 기독교에 밀려 잊고 있었던 신화를 다시 떠올렸고 황금 사과 정원에 대한 재해석이 시작되었다. – 409쪽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유희의 천성을 타고났으므로 함께 노닐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가 되었든 그곳이 진정한 낙원일 것이다. 그러나 바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들이 공원을 찾을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멀리 있는 공원을 그림의 떡처럼 바라만 보면서 계속 목말라해야 하나. 아니면 열심히 벌어서 근교나 시골에 전원주택을 마련해야 할까. 그런데 이런 문제가 또 있다. 에버네저 하워드의 전원 도시 콘셉트에서 살펴보았듯 대부분의 사람은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고 또 살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답은 매우 간단하다. 도시를 낙원으로 만들면 된다. – 577쪽
차례
001 정원과 조형 사이의 줄타기
002 뼈만 남은 건축
003 생태파시즘
004 생태가 미학을 만나다
005 춤추는 창문의 착한 곡선
006 르 코르뷔지에, 세상을 디자인하다
007 1968년
008 조용한 멕시코 혁명
009 내 건축에 녹색 레이스를 입혀다오
010 마사 슈왈츠의 베이글 작전
011 2차원의 마술사 TOPOTEK1
012 초본식물, 통제 불가능한 디바들
013 사이프러스, 회양목, 자작잎서어나무
014 윌리엄 로빈슨의 와일드 가든
015 미스 지킬
016 개인의 발견과 ‘미래의 정원’
017 모더니즘 정원의 바리톤
018 모네와 초원의 꿈
019 마르셀 프루스트의 예언
020 내가 만약 피에트 아우돌프의 정원에 간다면
021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프레리의 꿈
022 젠스 젠슨의 민족 경관에 장미는 없다
023 어느 철인이 발견한 문화 경관
024 베르길리우스가 노래한 아르카디아는 어디에
025 아르카디아에도 죽음은 있다
026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정원 풍경화
027 산업 자연의 낭만
028 덫과 축복이 되어 돌아온 황야
029 시민의 천국이 되어 돌아온 공항
030 사라와지를 찾아야 하는 이유
031 미와 덕의 풍경
032 얼마 후 프랑스에서는
033 알렉산더 포프, 고대 시에서 영감을 얻다
034 헨델은 왜 런던을 택했나
035 팔라디오의 건축과 윌리엄 켄트의 등장
036 후원자 샤프츠베리 백작
037 콥햄 자작의 엘리시움, 스토우 정원
038 픽처레스크한 스토우 정원의 오후
039 ‘하하’의 존재 이유
040 인클로저, 풍경의 사유화 과정
041 장식 농장, 정원과 전원의 경계 없이
042 그린 핑거스
043 몬티첼로의 불편한 진실
044 청년 군주 프란츠 공이 이룩한 계몽 국가
045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미스터 브라운의 풍경
046 템스 강이여, 나를 용서치 말라
047 큐 가든의 폴리들, 1헥타르에 압축된 세계
048 오 샹젤리제, 앙투안 와토의 전략
049 농가의 아낙, 마리 앙투아네트
050 몽소 공원, 여기는 영국 정원이 아님
051 이상 도시 쇼, 독인가 약인가
052 순백의 이상 도시 워싱턴 D.C.
053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
054 유럽 최초의 ‘민주적’ 정원
055 베를린의 허파
056 어느 망자의 정원 기행
057 로마 시민을 위한 물, 아콰에둑투스
058 줄리아 여사를 위한 물
059 황제를 위한 물
060 길 혹은 쿠오 바디스
061 님프의 집
062 빌라
063 농자 로마지 대본
064 로마의 그린벨트 혹은 피의 값으로 치러진 정원들
065 포룸 로마눔의 베레스 스캔들
066 고고학자들에게 갈채를
067 알키노오스의 정원, 호메로스에게 듣다
068 아도니스 정원,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
069 헤라클레스, 올림피아에 가다
070 소크라테스는 어디로 출근했나
071 헤라클레스가 등 뒤에 감추고 있는 것
072 인류 최초의 정원사들
073 어느 건축가의 꿈
074 네바문의 서천 정원
075 나일 강에서 빌라 데스테까지
076 오페라, 마술피리의 두 얼굴
077 루브르 피라미드, 페이의 수석 정원
078 공중 정원의 진실 게임
079 왕과 정원사, 베르사유 정원의 지배자들
080 대왕의 포도나무 언덕, 포츠담 상수시
081 파라다이스와 사분원의 원작자를 찾아서
082 알람브라,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
083 타지마할, 시간의 뺨에 흐르는 눈물
084 중세의 이상 도시 설계도
085 알베르투스 대주교의 고민
086 정원의 새벽
087 빛을 담은 곳, 중세의 고딕 성당
088 도시 공기는 자유롭다
089 피렌체의 봄
090 피에솔레 정원, 르네상스 정원의 시작
091 로렌초의 조각 정원과 미켈란젤로
092 카스텔로 정원, 르네상스 정원의 완성
093 식물원, 식물 수집, 식물 사냥
094 빌랑드리 ‘채소 문양 정원’
095 장미의 길, 약용 식물에서 정원의 여왕으로
096 아르누보,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097 바우하우스, 건축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098 전원 도시의 다이어그램, 하워드는 도시를 원했다
099 라 빌레트, 공원 도시의 시작
100 21세기의 고민, 도시도 낙원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