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왕국의 칼 대제, 푀르스터를 만나다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도서출판 나무도시

칼 푀르스터 지음 / 고정희 옮기고 엮음(편역)
304면 / 무선제본 / 2도 / 신국판 / 15,000원
ISBN 978-89-94452-23-4 03520 / 2013년 11월 25일 출간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꽃과 정원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독일 정원의 아버지’ 칼 푀르스터,
그의 일대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책은……
이 책은 “꽃의 제왕, 정원 왕국의 칼 대제,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1874~1970)가 생전에 썼던 27권의 책과 수백 편의 에세이, 수만 통의 편지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글을 선별하여 엮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의 사후에 미망인과 친지들이 뜻을 모아 그의 삶을 재구성하여 8년 만에 펴낸 책으로, 칼 푀르스터가 만 15세에 정원사 교육을 받기 시작하며 쓴 편지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인 96세에 쓴 글과 메모까지 긴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시기상으로 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글들이다. 그가 개발한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에 맞춰 그의 삶을 일곱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에 썼던 글과 편지를 실었다.
독일 역사 중에서 가장 파란이 많았던 격동의 세월을 보낸 칼 푀르스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정원을 가꾸고 정원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관된 삶을 살았다. 혼란을 피해 정원으로 숨어들었던 것이 아니라, 꽃의 아름다움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찾을 수 있다는 독특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신념을 평생 복음처럼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정원을 ‘처방’했다. 이 책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숙근초 육종을 포기하지 않고, 구술을 통해 새로운 정원 책을 집필한 정원형 인간의 구십 평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일곱 계절의 정원’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동안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가능하면 지구 전체를, 적어도 독일 땅 전체를 꽃으로 채우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소망이 투사되어 있다.

본문 중에서……
보르님 정원이라고 하면 대개는 이 선큰정원을 말한다. 사방에 마련된 계단을 따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문득 별천지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저 내 눈앞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이 꽃으로 둘러싸여 꽃 속에 들어앉은 형국이 되니 결국 세상 자체가 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선 꽃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마치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존재하여 그 별빛을 통해서 우주가 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듯, 지상에서는 나와 하늘, 즉 나와 빛의 근원 사이에 수없이 많은 꽃들이 존재하여 이 꽃들을 통해 세상에 빛이 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는 등식을 만드는 것이 칼 푀르스터의 의도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빛에 대해 유난히 민감하다는 점을 여러 대목에서 느낄 수 있다. 심지어 그는 빛과 색이 아름다운 생명으로 변신하여 나타난 ‘기적의 존재’가 꽃이라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선큰정원을 움푹 팬 커다란 방주로 여기고 하늘을 덮개로 파악한다면 선큰정원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세상이 되는 셈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물론 기적의 존재인 꽃들이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순간 인간들도 꽃이 되어 버린다. 꽃물이 들고 꽃향기가 배어 스스로 아름다워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세상에 다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도 꽃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칼 푀르스터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였으며 이렇게 세상을 꽃으로 채워 사람들에게 꽃물을 들이고 꽃향기에 적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이 하늘에서 받은 사명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_ 25쪽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숙근초들을 배식해 놓은 사례가 아직 드물다. 게다가 숙근초의 속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아직 많은 사람들이 겨울에도 나무처럼 바깥에서 월동시킬 수 있는 꽃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직 일년초와 반숙근초 등이 어지럽게 섞여 있어 꽃의 유형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어렵다. 나약한 구식 초화들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숙근초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점 많고 나약한 구식 초화들에서 비롯된 꽃에 대한 선입견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은 그동안의 노력에 의해 이미 극복된 지 오래이다. 물론 요즘에 와서 이 자연의 보물들이 보여주는 묘기에 대한 인식이 해마다 조금씩 커가고 있는 건 기쁜 일이다. 특히 정원 애호가들 세계에서 숙근초의 존재가 서서히 인지되어 가고 있다. 숙근초의 세계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나무와도 다르고 일년초와도 다르다. 그들은 마치 사람과 영혼의 교감을 이루겠다는 듯 다가오는 존재들이다. 봄에 싹이 터서 성장하고 꽃피고 스러졌다가 다시 깨어남을 반복하는 건 숙근초밖에 없다. 나무들은 겨울에도 꿋꿋하게 서 있지만 숙근초는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봄에 다시 싹이 트는 것이다. 연약해 보이지만 강건하고, 피로하게 시들었다가 소년의 신선함으로 다시 태어난다. 숙근초들이 보여주는 영웅적이고 열정적인 생명력과 생장성, 기적과 같은 적응력을 다른 식물 유형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원예가들이 내세우는 미적 기준을 이들보다 더 잘 맞춰주는 식물도 없다. 숙근초에겐 정원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원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별난 능력이 내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식물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비밀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들이다. 앞으로 공원과 정원에 이 보물들이 확실히 자리 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한편 숙근초를 통해 정원뿐 아니라 자연 경관에 대한 이해도 심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_ 115쪽

지은이 _ 칼 푀르스터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는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여 년 동안 포츠담 보르님에 머물며 숙근초 육성과 전시정원 조성, 글쓰기에 집중하여 총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었고 27권의 책을 집필했다.
정원 왕국의 칼 대제, 꽃의 제왕,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새로운 정원 문화의 확산이었다. 재배원에서 직접 육종한 숙근초들을 보급함과 동시에 글과 강연을 통해 이들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고, 재배원 부지에 자택을 짓고 전시정원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개방하였다. 정원사가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자신이 재배한 꽃을 바로 정원에 심어 자라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 역시 전례가 없었다. 새로운 꽃들의 육종, 그의 글과 사진 그리고 ‘실물’을 볼 수 있는 정원이 삼박자가 되어 정원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의 무대가 된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장이자 교육의 장소였으며 칼 푀르스터 자신에겐 연구소였다.
또한 칼 푀르스터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을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곱 계절의 정원이란 꽃뿐 아니라 억새나 수크령 같은 벼과식물부터 고사리까지, 그리고 당연히 꽃피는 수목들을 조합하여 초봄부터 늦가을, 겨울까지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각 계절마다 두어 가지 꽃을 심어 놓고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곱 번이건 칠백 번이건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곱 계절의 정원’은 ‘세상이 다 꽃으로 채워지는 그날’과 같은 뜻의 정원 프로그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칼 푀르스터의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옮기고 엮은이 _ 고정희
“칼 푀르스터 선생과 여러 달 씨름을 하다 보니 마치 그의 영혼 속에 허락 없이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오래 전에 발표되어 널리 알려진 글들이고 예전에도 여러 번 읽었던 글들인데 지금까지는 늘 건성으로 읽었었나 보다. 번역을 하다 보니 그의 숨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해독이 안 되는 글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슬쩍 넘어갈 수도 책을 덮어버릴 수도 없으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고,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영혼이 아플 정도였다. 문득 지금까지 내 삶의 여정에서 벌어진 여러 ‘우연’들이 왜 나를 자꾸만 칼 푀르스터 쪽으로 몰아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과정 때 설계사무실 FPB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거기 소장이 칼 푀르스터 재단 회장이었던 것도 그렇고, 지도 교수님이 재단의 이사였고 두 분이 동시에 추천해서 나도 이사가 되어 버린 것도 그렇다. 외국인을. 어쩌자고……. 당황스러웠지만 영광이었다. 그리고 학위 논문을 쓸 때 칼 푀르스터와 이십 년을 같이 일했던 함머바허 여사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던 것, 푀르스터의 딸 마리안네와 친구가 되어 십여 년을 절친하게 지냈던 것까지. 그러면서도 칼 푀르스터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게 되면 너무 깊은 우물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지금껏 슬슬 외곽을 맴돌았었다. 그의 글을 옮기면서 그의 우물에 깊이 빠져보니 ‘은하수에서 커피를 마시는’ 한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영혼 전체가 햇빛이 화사한 정원이었다.“

차례……

프롤로그_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신비주의자
칼 푀르스터
꽃을 통해 보는 세상, 보르님 선큰정원
칼 푀르스터의 정원 신학
칼 푀르스터의 후예들
푀르스터 가의 사람들
행복한 가족
삼부자 이야기
푀르스터 가의 여인들

1장. 초봄, 내 고향 천문대
어린왕자
베를린 천문대
내 고향 천문대
제3의 존재

2장. 봄, 길을 떠나 전력질주하다
슈베린에서의 정원사 교육
젊은 날의 기록(1)
슈베린에서의 2년 반
젊은 날의 기록(2)
젊은 시절의 요양 기간
젊은 날의 기록(3)
10년 동안의 유럽 종단
젊은 날의 기록(4)
베를린 베스트엔드, 숙근초 재배를 시작하다
푀르스터의 세계로 입문하는 열쇠
판과 프시케
신과 자연
포츠담 보르님에서
월동이 잘되고 오래 사는 꽃피는 숙근초란 무엇인가

3장. 초여름, 미래의 꽃피는 정원
『미래의 꽃피는 정원』과 『데미안』
신세대 정원에서 생명을 찾은 월동식물들, 숙근초, 관목, 덩굴식물 개요
구시대 정원과 신시대의 정원이란 무엇인가
꽃병에 대하여

여름
가을
겨울
제비고깔 찬가
제비고깔과 고딕 성당
파란빛 시간들
칼 푀르스터와 겨울
겨울 간조와 만조

4장. 한여름, 떠나라 머물러라
모든 떠남은 떠날 만한 것이다
이태리의 4월
기이한 결혼서약
결혼서약
아내에게, 딸에게(1)
무신론자의 기독교관
아내에게, 딸에게(2)

5장. 가을, 침묵을 깬 행복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으나 전쟁이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노란 정원
꽃과 열매는 그대의 귀향을 기다린다
위험한 세상
2차 세계대전 중의 편지와 기록
칠순잔치를 치르고 보낸 감사편지
자연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그림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동방 박사”에 대하여

6장. 늦가을, 존재함을 영원히 감사하다
칼 푀르스터 동무!
풀협죽도를 모르고 사는 인생
풀협죽도가 필 때면
작은 숙근초부터 우주의 별까지
벼과식물, 정원에 진출하다
고목
존재함을 영원히 감사함
칼 푀르스터와의 인터뷰
자기성찰
정열적인 노년의 나날들
수만 통의 편지들
노년의 기록

7장. 겨울, 늘 푸른 삶 ‘비타 셈페어비렌스’
겨울, 새로운 계절의 시작
신비 체험
잊지 못한 여행의 멜로디
무한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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