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정원 왕국의 칼 대제, 푀르스터를 만나다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도서출판 나무도시

칼 푀르스터 지음 / 고정희 옮기고 엮음(편역)
304면 / 무선제본 / 2도 / 신국판 / 15,000원
ISBN 978-89-94452-23-4 03520 / 2013년 11월 25일 출간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꽃과 정원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독일 정원의 아버지’ 칼 푀르스터,
그의 일대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책은……
이 책은 “꽃의 제왕, 정원 왕국의 칼 대제,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1874~1970)가 생전에 썼던 27권의 책과 수백 편의 에세이, 수만 통의 편지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글을 선별하여 엮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의 사후에 미망인과 친지들이 뜻을 모아 그의 삶을 재구성하여 8년 만에 펴낸 책으로, 칼 푀르스터가 만 15세에 정원사 교육을 받기 시작하며 쓴 편지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인 96세에 쓴 글과 메모까지 긴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시기상으로 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글들이다. 그가 개발한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에 맞춰 그의 삶을 일곱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에 썼던 글과 편지를 실었다.
독일 역사 중에서 가장 파란이 많았던 격동의 세월을 보낸 칼 푀르스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정원을 가꾸고 정원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관된 삶을 살았다. 혼란을 피해 정원으로 숨어들었던 것이 아니라, 꽃의 아름다움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찾을 수 있다는 독특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신념을 평생 복음처럼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정원을 ‘처방’했다. 이 책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숙근초 육종을 포기하지 않고, 구술을 통해 새로운 정원 책을 집필한 정원형 인간의 구십 평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일곱 계절의 정원’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동안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가능하면 지구 전체를, 적어도 독일 땅 전체를 꽃으로 채우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소망이 투사되어 있다.

본문 중에서……
보르님 정원이라고 하면 대개는 이 선큰정원을 말한다. 사방에 마련된 계단을 따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문득 별천지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저 내 눈앞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이 꽃으로 둘러싸여 꽃 속에 들어앉은 형국이 되니 결국 세상 자체가 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선 꽃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마치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존재하여 그 별빛을 통해서 우주가 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듯, 지상에서는 나와 하늘, 즉 나와 빛의 근원 사이에 수없이 많은 꽃들이 존재하여 이 꽃들을 통해 세상에 빛이 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는 등식을 만드는 것이 칼 푀르스터의 의도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빛에 대해 유난히 민감하다는 점을 여러 대목에서 느낄 수 있다. 심지어 그는 빛과 색이 아름다운 생명으로 변신하여 나타난 ‘기적의 존재’가 꽃이라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선큰정원을 움푹 팬 커다란 방주로 여기고 하늘을 덮개로 파악한다면 선큰정원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세상이 되는 셈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물론 기적의 존재인 꽃들이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순간 인간들도 꽃이 되어 버린다. 꽃물이 들고 꽃향기가 배어 스스로 아름다워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세상에 다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도 꽃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칼 푀르스터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였으며 이렇게 세상을 꽃으로 채워 사람들에게 꽃물을 들이고 꽃향기에 적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이 하늘에서 받은 사명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_ 25쪽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숙근초들을 배식해 놓은 사례가 아직 드물다. 게다가 숙근초의 속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아직 많은 사람들이 겨울에도 나무처럼 바깥에서 월동시킬 수 있는 꽃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직 일년초와 반숙근초 등이 어지럽게 섞여 있어 꽃의 유형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어렵다. 나약한 구식 초화들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숙근초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점 많고 나약한 구식 초화들에서 비롯된 꽃에 대한 선입견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은 그동안의 노력에 의해 이미 극복된 지 오래이다. 물론 요즘에 와서 이 자연의 보물들이 보여주는 묘기에 대한 인식이 해마다 조금씩 커가고 있는 건 기쁜 일이다. 특히 정원 애호가들 세계에서 숙근초의 존재가 서서히 인지되어 가고 있다. 숙근초의 세계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나무와도 다르고 일년초와도 다르다. 그들은 마치 사람과 영혼의 교감을 이루겠다는 듯 다가오는 존재들이다. 봄에 싹이 터서 성장하고 꽃피고 스러졌다가 다시 깨어남을 반복하는 건 숙근초밖에 없다. 나무들은 겨울에도 꿋꿋하게 서 있지만 숙근초는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봄에 다시 싹이 트는 것이다. 연약해 보이지만 강건하고, 피로하게 시들었다가 소년의 신선함으로 다시 태어난다. 숙근초들이 보여주는 영웅적이고 열정적인 생명력과 생장성, 기적과 같은 적응력을 다른 식물 유형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원예가들이 내세우는 미적 기준을 이들보다 더 잘 맞춰주는 식물도 없다. 숙근초에겐 정원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원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별난 능력이 내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식물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비밀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들이다. 앞으로 공원과 정원에 이 보물들이 확실히 자리 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한편 숙근초를 통해 정원뿐 아니라 자연 경관에 대한 이해도 심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_ 115쪽

지은이 _ 칼 푀르스터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는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여 년 동안 포츠담 보르님에 머물며 숙근초 육성과 전시정원 조성, 글쓰기에 집중하여 총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었고 27권의 책을 집필했다.
정원 왕국의 칼 대제, 꽃의 제왕,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새로운 정원 문화의 확산이었다. 재배원에서 직접 육종한 숙근초들을 보급함과 동시에 글과 강연을 통해 이들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고, 재배원 부지에 자택을 짓고 전시정원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개방하였다. 정원사가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자신이 재배한 꽃을 바로 정원에 심어 자라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 역시 전례가 없었다. 새로운 꽃들의 육종, 그의 글과 사진 그리고 ‘실물’을 볼 수 있는 정원이 삼박자가 되어 정원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의 무대가 된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장이자 교육의 장소였으며 칼 푀르스터 자신에겐 연구소였다.
또한 칼 푀르스터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을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곱 계절의 정원이란 꽃뿐 아니라 억새나 수크령 같은 벼과식물부터 고사리까지, 그리고 당연히 꽃피는 수목들을 조합하여 초봄부터 늦가을, 겨울까지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각 계절마다 두어 가지 꽃을 심어 놓고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곱 번이건 칠백 번이건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곱 계절의 정원’은 ‘세상이 다 꽃으로 채워지는 그날’과 같은 뜻의 정원 프로그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칼 푀르스터의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옮기고 엮은이 _ 고정희
“칼 푀르스터 선생과 여러 달 씨름을 하다 보니 마치 그의 영혼 속에 허락 없이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오래 전에 발표되어 널리 알려진 글들이고 예전에도 여러 번 읽었던 글들인데 지금까지는 늘 건성으로 읽었었나 보다. 번역을 하다 보니 그의 숨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해독이 안 되는 글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슬쩍 넘어갈 수도 책을 덮어버릴 수도 없으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고,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영혼이 아플 정도였다. 문득 지금까지 내 삶의 여정에서 벌어진 여러 ‘우연’들이 왜 나를 자꾸만 칼 푀르스터 쪽으로 몰아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과정 때 설계사무실 FPB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거기 소장이 칼 푀르스터 재단 회장이었던 것도 그렇고, 지도 교수님이 재단의 이사였고 두 분이 동시에 추천해서 나도 이사가 되어 버린 것도 그렇다. 외국인을. 어쩌자고……. 당황스러웠지만 영광이었다. 그리고 학위 논문을 쓸 때 칼 푀르스터와 이십 년을 같이 일했던 함머바허 여사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던 것, 푀르스터의 딸 마리안네와 친구가 되어 십여 년을 절친하게 지냈던 것까지. 그러면서도 칼 푀르스터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게 되면 너무 깊은 우물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지금껏 슬슬 외곽을 맴돌았었다. 그의 글을 옮기면서 그의 우물에 깊이 빠져보니 ‘은하수에서 커피를 마시는’ 한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영혼 전체가 햇빛이 화사한 정원이었다.“

차례……

프롤로그_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신비주의자
칼 푀르스터
꽃을 통해 보는 세상, 보르님 선큰정원
칼 푀르스터의 정원 신학
칼 푀르스터의 후예들
푀르스터 가의 사람들
행복한 가족
삼부자 이야기
푀르스터 가의 여인들

1장. 초봄, 내 고향 천문대
어린왕자
베를린 천문대
내 고향 천문대
제3의 존재

2장. 봄, 길을 떠나 전력질주하다
슈베린에서의 정원사 교육
젊은 날의 기록(1)
슈베린에서의 2년 반
젊은 날의 기록(2)
젊은 시절의 요양 기간
젊은 날의 기록(3)
10년 동안의 유럽 종단
젊은 날의 기록(4)
베를린 베스트엔드, 숙근초 재배를 시작하다
푀르스터의 세계로 입문하는 열쇠
판과 프시케
신과 자연
포츠담 보르님에서
월동이 잘되고 오래 사는 꽃피는 숙근초란 무엇인가

3장. 초여름, 미래의 꽃피는 정원
『미래의 꽃피는 정원』과 『데미안』
신세대 정원에서 생명을 찾은 월동식물들, 숙근초, 관목, 덩굴식물 개요
구시대 정원과 신시대의 정원이란 무엇인가
꽃병에 대하여

여름
가을
겨울
제비고깔 찬가
제비고깔과 고딕 성당
파란빛 시간들
칼 푀르스터와 겨울
겨울 간조와 만조

4장. 한여름, 떠나라 머물러라
모든 떠남은 떠날 만한 것이다
이태리의 4월
기이한 결혼서약
결혼서약
아내에게, 딸에게(1)
무신론자의 기독교관
아내에게, 딸에게(2)

5장. 가을, 침묵을 깬 행복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으나 전쟁이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노란 정원
꽃과 열매는 그대의 귀향을 기다린다
위험한 세상
2차 세계대전 중의 편지와 기록
칠순잔치를 치르고 보낸 감사편지
자연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그림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동방 박사”에 대하여

6장. 늦가을, 존재함을 영원히 감사하다
칼 푀르스터 동무!
풀협죽도를 모르고 사는 인생
풀협죽도가 필 때면
작은 숙근초부터 우주의 별까지
벼과식물, 정원에 진출하다
고목
존재함을 영원히 감사함
칼 푀르스터와의 인터뷰
자기성찰
정열적인 노년의 나날들
수만 통의 편지들
노년의 기록

7장. 겨울, 늘 푸른 삶 ‘비타 셈페어비렌스’
겨울, 새로운 계절의 시작
신비 체험
잊지 못한 여행의 멜로디
무한궤도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 – 칼 푀르스터의 정원을 가꾼 마리안네의 정원 일기

도서출판 나무도시

마리안네 푀르스터 지음 / 고정희 옮김
256면 / 무선제본 / 올컬러 / 신국판 / 15,000원
ISBN 978-89-94452-24-1 03520 / 2013년 11월 25일 출간

평생에 걸쳐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고
27권의 책을 집필한
‘정원 왕국의 대제’ 칼 푀르스터!

그와 마리안네가 100여 년 동안 가꾸고 일군
보르님 정원의 ‘일곱 계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책은…...
이 책은 “꽃의 황제, 정원 왕국의 칼 대제, 독일 정원의 아버지” 등으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의 외동딸 마리안네 푀르스터가 독일 포츠담에 있는 보르님 정원을 일곱 계절 동안 가꾸며 쓴 정원 일기다. 칼 푀르스터가 1912년 보르님 구(區)에 위치한 감자밭 수 헥타르를 구입해 처음 조성한 보르님 정원은 독일 정원 문화가 새롭게 퍼져나간 정원 학당이자 순례지였다. 칼 푀르스터는 이곳에서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었고, 보르님 정원을 전시정원으로 조성해 자신이 개발한 일곱 계절(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동안 꽃피는 정원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마리안네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보르님 정원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쓰여졌지만, 보르님 정원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정원 에세이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 평생 정원사이자 조경가로 일하며 한시도 꽃과 정원을 떠나지 않았던 마리안네 푀르스터의 식물과 정원을 대하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시선은 보르님 정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재치 있는 글은 자칫 정적이기 쉬운 정원 일기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정원 일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일러준다.

한편,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는 세계적인 정원 사진작가 게리 로저스와 마리안네의 사진은 보르님 정원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수많은 정원 식물과 일곱 계절 내내 우리의 오감을 충만하게 해주는 푀르스터의 전시정원 속으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본문 중에서……
마리안네 푀르스터는 1931년 1월 1일 포츠담 보르님의 자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밑에서 정원사 교육을 받고 몇 년 간 유럽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아버지 칼 푀르스터는 정원사가 갖추어야 할 소양과 교육 내용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5년간의 교육 후에 10년 이상 실무 경험을 쌓되 한 고장에 머물지 말고 방랑하며 견문과 학식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여러 유형의 자연 경관을 두루 접하고 연구해야 하며 각종 식물원과 재배원을 섭렵하여 폭넓은 실무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그 자신 역시 그렇게 살았었다.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후 그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은 벨기에의 조경가 르네 페셰르의 설계사무실이었다. 르네 페셰르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때는 이미 동서가 갈라졌던 시기였으므로 공산주의 치하의 포츠담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브뤼셀에서 눌러앉아 30년을 살았다. 물론 해마다 휴가 때 집을 다녀갔다. 일방통행이긴 했지만 동서독일은 왕래가 가능해서 서쪽에서 동쪽을 방문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통일이 된 후에야 완전히 귀향했다. 그리고 보르님 정원을 돌보며 제3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에 귀향한 후 백혈병을 얻어 2010년 3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리안네 푀르스터는 하루도 정원을 떠나지 않았다. 독일연방문화재청에서 이미 그녀 생전에 그녀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두었다. 후사가 없었으므로 그녀의 사후에 집과 정원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정원 관리는 포츠담 시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집은 ‘칼 푀르스터 박물관’으로 변모될 예정이어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결국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보르님 정원은 지금도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누구나 찾아갈 수 있게 늘 문이 열려 있다. 처음 조성할 때부터 정원 문화를 접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마련한 것이었으므로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다만 푀르스터 가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의 손길이 사라졌음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정원은 살아있는 존재라서 사랑을 먹고 산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구석구석 사랑이 미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정원 귀신들이 떠나간 자리가 느껴진다. _ 15쪽

“어, 이 정원이 아직도 있네요!” 통일이 된 후 서쪽에서 온 손님들이 이렇게 놀라곤 했다.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정원 애호가들도 동서로 나뉘었으므로 서쪽에 살던 사람들은 포츠담 보르님에 있는 칼 푀르스터 정원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원이 몇 년 된 것인가? 모든 것이 그 당시 그대로인가? 아버지가 육종한 식물들이 여전히 심겨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 옛날의 흑백사진으로 역사를 설명하고 컬러사진을 새로 찍어 현황을 알리고자 한다. 또한 도면과 정원의 각 부분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중략… 이 책을 쓰면서 지금은 나의 정원이 된 아버지의 정원을 새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엔 당연하던 것들이 새삼스러워졌고 다른 사람들 눈엔 어떻게 비칠지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물론 전보다 훨씬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어서 함께 일하는 정원사들이 힘겨워 하기도 하지만 정원이 내 가슴속에 보다 더 깊숙이 자리 잡은 것 같다. 독자들이 나의 이런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최근에 이런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이제 이 정원은 그대 아버지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대의 정원이지요. 사람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움도, 부족한 점도 모두 책임질 분은 이제 당신입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아버지께서 아주 오래 전에 공간을 만드셨고 그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생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의 과제였다고. _ 23쪽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장이자 교육의 장소였으며 칼 푀르스터 자신에겐 연구의 장소이기도 했다. 여기서 ‘일곱 계절의 정원’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숙근초뿐 아니라 벼과식물, 고사리, 상록관목들을 조합하여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늘 아름답고 변화하는 정원을 실험하였다. ‘항상 피어있는 정원’이란 모토 하에 계절별로 수많은 식물들을 조합하였으며, 특히 ‘겨울에도 아름다운 정원’이란 콘셉트가 여기서 탄생되었다. 또한 칼 푀르스터는 자신의 정원이 인근 주민들에게 편안한 가족 소풍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애썼다. “정원사란 직업이 가장 즐거운 이유 중의 하나는 식물과 정원에서 비롯된 기쁨이 사람을 만나는 기쁨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서로 대화 없이 무심코 지나치던 사람들이 정원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게 되었다. 식물이 점점 더 성장하고 더 아름다워지는 것과 비례하여 사람들 역시 더 크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칼 푀르스터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_ 34쪽

5월 초, 연못가 단풍나무가 잎을 가득 달고 있다. 황홀한 정경이다. 봄엔 빨간색, 여름엔 진녹색, 가을엔 날씨에 따라 구릿빛에서 황금색으로 변하는데, 해마다 조금씩 다른 색의 조화를 보이는 것이 정말 마술 같다. 올해 이 단풍나무가 꼭 81세가 된다. 1924년 빌헬름 샤크트 씨가 아버지 밑에서 일할 때 심은 것이다. 그 분은 나중에 뮌헨 식물원 원장이 된다. 처음 심었을 때 이 나무는 아주 작고 꼿꼿했었다. 양친께서 나무의 양지쪽에 ‘무리엘’ 조릿대를 심어 해를 가려주었다. 단풍나무는 겨울 햇빛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릿대가 너무 커지자 나무는 해를 따라 목을 길게 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게 되었는데 속사정을 모르는 많은 이들이 이 동양화 같은 모습에 반해 흉내를 내려고 한다. 지금 이 단풍나무는 장년에 접어들어 ‘지팡이’가 필요하게 되었다. 비바람이 불 때마다 내 시선은 우선 이 동양에서 온 노신사에게로 향한다. 정원박람회를 위해서 우리 정원을 복원할 때 ‘무리엘’ 조릿대 대신 우아한 오죽 ‘보리아나’로 바꿔 심었다. _ 71쪽

지은이 _ 마리안네 푀르스터
“꽃의 제왕, 정원 왕국의 칼 대제”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의 외동딸인 마리안네 푀르스터(1931~2010)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그 역시 평생 꽃과 정원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 칼 푀르스터의 숙근초 육종 및 재배원에서 정원사 교육을 받은 후, 브뤼셀의 르네 페셰르 설계사무실에서 30여 년간 일하며 조경가 및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1990년 독일로 귀국한 후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포츠담 보르님의 칼 푀르스터 정원을 돌보고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차례……

옮긴이의 글
책을 펴내며

보르님 정원의 어제와 오늘
정원의 탄생
정원의 주요 공간들
정원의 특징과 변천과정
정원의 재탄생

1. 초봄: 2월말에서 4월말까지
봄을 기다리며
부활절에 돋아난 첫 단풍잎
봄길에 시작된 꽃의 행렬

2. 봄: 4월말에서 6월초까지
봄 교향곡에 섞인 작은 북소리
구근들의 색의 잔치가 시작되다
선큰정원에 가득한 봄기운
모란, 슐레지엔에서 온 귀한 손님
볼프강이라 불린 금붕어
보르님 정원의 동물들
잘라줘야만 하는 것들
만병초 미인들
일찍 피는 장미나무들
꿈처럼 매일 변신하는 정원
색의 삼화음
이젠 여름이 와도 좋다
황제나팔꽃 작전
대형화분의 전통을 이어가다

3. 초여름: 6월초에서 6월말까지
장미는 언제 보아도 기쁘다
장미의 기사에 대하여
시심 가득한 신세대 장미 기사들
살비아의 전성시대
아버지의 비비추 사랑

4. 한여름: 6월말에서 8월말까지
언제나 환영, 정원 방문객들
한여름의 정원관리
8월은 선물이 가장 많은 달
노루오줌, 그늘에 가려진 보물
풀협죽도의 향기
파란 풀협죽도를 찾아서
연못, 늘 궁금한 곳
태양의 신부, 키가 너무 크지 않아야

5. 가을: 8월말에서 11월초까지
보르님 품종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다
두더지와 물밭쥐에 대해서
해마다 커지는 그늘
첫서리의 매력
새신랑 새색시 인사드립니다
가을정원의 프리마돈나들
가을의 마법
정원애호가들의 힘든 시간들
육종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6. 늦가을: 11월초에서 12월초까지

7. 겨울: 12월초에서 2월말까지
성탄절 장식 만들기
겨울잠

정원의 일곱 계절을 빛내주는 식물들
감사의 글
칼 푀르스터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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