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의 중세 정원 이야기 1

고정희 지음

도서출판 나무도시
343면 / 무선제본 / 올컬러 / 신국판 / 20,000원

201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천 년을 넘게 지탱한 수도원의 정원,
그리고 모험과 사랑이 충만했던
기사들과 시인들의 정원 속으로 떠나는 긴 시간 여행!”

이 책은……
타고난 정원 이야기꾼인 고정희 박사의 세 번째 정원 이야기! 전작이었던 “독일 정원”과 “바로크 정원”에 이어 “중세”를 택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 상징과 수수께끼로 가득 찬 중세 정원의 신비를 풀어가는 지적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한 점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파라다이스 정원”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 수도원 정원에 담겨 있는 상징과 역할은? 또 중세 전문가들이 아직까지도 그 비밀을 파헤치고 있는 성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이야기부터 로쿠스 아모에누스의 귀환에 이르기까지, 한 꺼풀씩 드러나는 중세 정원의 모습은 색다른 차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편, 르네상스 정원과 바로크 정원의 커다란 유산 때문에 실제 정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중세 정원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3년여 동안 유럽의 곳곳을 답사하고, 수많은 중세 문헌을 연구한 저자의 긴 시간 여행이 이끄는 곳은 중세 정원이면서 동시에 중세라는 시대이다. 때문에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던 중세가 결코 암흑의 시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중세 정원의 실체를 하나씩 추적해가는 저자의 노력은 긴 창을 옆구리에 끼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용감하게 돌진하는 늙은 기사처럼 무모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지적 탐구의 긴 여정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을 전해준다.

본문 중에서……
우리들이 지금도 조상신들의 존재를 어느 정도 믿고 존중하는 것처럼 중세 사람들은 신과 각종 악귀와 잡귀들의 존재를 믿었고 요정과 마법사를 믿었다. 세상에는 사람들과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공존한다고 믿었다. 하늘에 그리고 땅 밑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도 굳게 믿었다. 오로지 사람들이 사는 지상이 전부라고 믿고 있는 우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도 마찬가지였지만 중세 역시 마법으로 가득한 시대였다. 이런 다차원적인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상징의 힘을 빌어야 했었다. 그것이 그들이 알고 이해하던 세상이었다. 그런 그들의 세상을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면서 미신이 가득했고 미개했던 세상이라고 말 할 자신이 없다. 오히려 아직도 풀어내야 하는 수수께끼가 많은 신비한 세상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독자들에게 그 시대의 마법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전달해 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하고 인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덜 아름다워 보인다. 지금 지구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때문에 더욱 그러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증명할 수 없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깊은 세상을 독자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중세의 매력에 빠져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_ p.9

유럽 중세의 정원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수도원 정원, 파라다이스 정원, 장미 정원, 기쁨의 정원, 사랑의 정원, 비밀의 정원……. 하긴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만들어 낸 것이니 이름이 많을 수밖에.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이름들이 생긴 것은 중세의 정원이 다양하고 풍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럽 중세 정원의 실체는 단순했다. 위의 많은 이름 중 실제로 만들어진 정원은 수도원 정원과 기쁨의 정원뿐이었다. 중세 사람들에게 정원은 우선 ‘식물이 심겨있는 곳, 혹은 식물이 있는 곳‘이었다. 이 식물들은 대개 유용 식물들이었다. 아직 정원 디자인의 개념이란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정원이 감상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다. 유용한 식물을 심은 약초원, 채소밭, 과수원을 모두 정원이라 불렀고 자연경관 속에서 사람이 ’머물기에 좋은 곳‘이 있으면 이것도 정원이라고 불렀다. 정원은 유용한 곳이었고 머무는 곳이었다. 먼저 유용한 정원으로 시작되었다가 후에 머물기 좋은 곳이 되었고 머물기 좋은 곳을 의도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기쁨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유럽 정원의 출발이 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정원의 개념이 확연하게 두 방향으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위에서 본 실제 정원의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으로서의 정원이었다. 파라다이스 정원, 사랑의 정원, 비밀의 정원은 실제로 만들어진 정원이 아니고 상징으로만 존재했었다. 상징으로서의 정원은 또 다시 종교적 상징성과 문학적 상징성으로 나누어야 한다. 종교적인 것은 주로 그림으로 표현되었고, 문학 속에서 비로소 속세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속세의 그림은 이야기책의 삽도로 감추어져 있었다. 중세 때 가장 인기 있었던 장르는 영웅들의 무훈담과 기사들의 모험담이었다. 중세를 편의상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건국신화가 만들어졌던 전반부에는 영웅들의 무훈담이, 기사도가 형성되었던 후반부에는 기사들의 모험담이 노래로 불렸다. 이 노래들 속에서 많은 정원과 만나게 된다. 이 정원들은 장미정원, 비밀의 정원, 혹은 그저 정원이라고 불렸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였다. _ p.12~14

상징은 시대의 암호이다. 한 시대가 지나가면 상징도 함께 묻혀버리고 만다. 다음 시대의 사람들은 지나간 시대의 상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오랫동안 중세를 이해하지 못했다. 덕분에 중세는 암흑기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중세가 어두웠던 건, 밤을 밝힐 수 있는 것이 촛불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 촛불설 외에도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교회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서 세상이 어두웠다는 거였다. 다른 하나는 중세 초기에 대한 사료가 없어 시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 즉 dark ages라고 부른 것이다. 교회의 그림자가 깊었던 것도 맞고 사료 탐구가 어려운 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시대 전체가 암흑에 싸여 있었다고 믿는 것은 좀 가혹하다. _ p.21~22

중세의 정원은, 그리고 정원을 노래한 많은 글과 그림이 중세가 결코 어둠의 시대만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줄기차게 정원과 사랑을 노래했던 시대가 어두웠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기부터였다. 그리고 근세 초기가 되면 세상은 정말 어두웠다. 르네상스 예술의 불이 그리 환하게 타올랐던 것은 아마도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 스스로를 태웠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바로크 시대가 오자 역사에 그리 밝지 못한 사람들이 어두웠던 시대가 중세였다고 말했던 거다. _ p.22

 

차례……
프롤로그
중세의 정원, 에덴의 동쪽과 서쪽
중세의 파라다이스 정원은 마리아였다
기사와 시인들의 정원은 모험이었고 사랑이었다

Part1. 시대
1. 유럽의 중세는 어떤 시대였나
2. 중세의 시작
게르만족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다
민족 대이동
기독교의 전파
봉건제도가 시작되다
최초의 유럽인 카롤루스 대제
힘의 분배 – 황제와 교황
수도원과 수도회
“성자와 현자의 섬” 아일랜드
3. 중세 황금기
혁명의 시대
중세의 베스트셀러 – 아서 왕 전설과 니벨룽겐의 노래
기사도와 십자군 전쟁
교황청의 위기
4. 중세 말기 – 어둠의 시대
검은 죽음
백년전쟁 – 영국과 프랑스의 실질적인 탄생기
동방박사들이 가져 온 물음들 – 새 시대의 시작

Part2. 정원
1. 수도원 정원
떠도는 왕국 – 정원은 어디에
수도원과 속세의 관계는 정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치유의 정원
수도원 정원에 영향을 준 것들
2. 수도원 정원의 구조
실용 정원과 종교적 상징 정원
성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 중세적 도시 개발 계획의 청사진
약초원
중세 최초의 정원 디자이너 –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역할
3. 기사의 정원
잠자는 미녀의 정원
기사들의 삶과 정원과의 상관관계
중세 전반기의 기사문학 – 이야기 속의 정원
시로 보는 정원 – 로쿠스 아모에누스의 귀환
그림으로 보는 정원 – 정원이 사랑의 알레고리가 되다
비너스의 귀환 – 르네상스로 가는 길

에필로그
중세엔 튤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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