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 유럽 정원에 담겨 있는 공간의 비밀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 유럽 정원에 담겨 있는 공간의 비밀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유럽 정원에 담겨 있는 공간의 비밀

고정희 지음 / 256면 / 반양장 / 올 컬러 / 152×210 / 14,000원

초판 1쇄 출간: 2008년 6월 2일

출판사 책 소개: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바로크 시대 인물들과 흥미진진한 유럽 정원의 비밀 속으로!

지금까지 알고 있던 베르사이유는 잊어라!

보이는 것과 보아야 하는 것의 차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그림만이 아니다!

“사진은 베르사이유 정원 테라스에서 운하 쪽으로 내려다 보며 찍은 중앙 축의 전경이다. 정원이 끝나는 지점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나 베르사이유 정원을 거닐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렇게 한 눈 안에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는 정원이 실은 끝도 없이 넓다는 것을. 걸으면 걸을수록 운하는 점점 멀어져 간다. 마치 신기루 같고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중앙축의 길이가 테라스에서 운하가 끝나는 지점까지만 대략 3킬로미터쯤 된다. 어떻게 3킬로미터 공간을 한 눈에 쏙 들어오게 만들 수 있는가. 이것이 르 노트르 공간 디자인의 관건이었다.”(본문 69쪽)

이 책은 베르사이유, 보 르 비콩트, 헤렌하우젠, 쌍수시 정원을 대상으로, 바로크 정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하고 소멸하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공간의 마술사로 불리는 르 노트르의 ‘공간 비밀’, 베르사이유의 운하와 아폴로 분수, 녹색 양탄자, 라토나 분수에 담겨 있는 숨은 의미를 파헤침으로써 바로크 정원의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바로크의 공간 혁명과 역원근법을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유럽 정원의 비밀 속으로…

“운하의 양변을 이어나가다 보면 저 멀리 지평선에서 서로 만나는 지점을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을 소실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간혹 일반 가로수 길에서 이 소실점이 실제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세상이 왜소해 보인다. 세상의 끝이 한 점으로 축소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베르사이유 정원에서는 이 소실점이 보이지 않는다. 미연에 방지했기 때문이다. 태양왕께서 보시기에 자기 세상이 한 점으로 끝나버린다면 얼마나 노하셨겠는가? 소실점이 생기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소실점이 인지되지 않을 적당한 위치에 횡으로 장애물을 두는 방식을 즐겨 취했다. 베르사이유에서 시도된 이후 바로크 정원에서 늘 이용되었던 것이다. 장애물에 걸리면 앞으로 향하던 눈이 옆으로 이동하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공간이 마무리 되며 하늘과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동시에 장애물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해지게 된다. 눈으로 보고 인지하는 것과 상상되는 것들을 교묘하게 배합한 것이다.”(본문 71-72쪽)

태양왕 루이 14세를 위해 공간의 마술사 르 노트르가 창조한 베르사이유 정원에는, 왜 소실점이 없는지, 3킬로미터의 공간이 왜 이리 짧아 보이는지, 녹색 잔디밭 뒤에 있는 운하가 왜 잔디밭 보다 커 보이는지, 잔디밭은 왜 경사져 있는지, 이런 것들을 궁금해 한 독자들은 사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잔디밭은 절묘한 계산 하에 기울어져 만들어졌고, 아폴로 분수는 그저 장식용으로 그 자리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운하의 양 옆에 줄지어 심겨져 있는 나무들 역시 필요에 의해 그곳에 자리 잡았다.

거대한 베르사이유 정원은 역원근법과 공간 접기, 끌어 당기기, 망원경 효과, 숨바꼭질 기법, 착시 효과 등과 같은 공간 장치와 다양한 기법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탁월하고 치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은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정원에 감추어져 있던 의도된 장치들이 선사해주는 정원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바로크 시대 인물들
다양한 공간 장치들과 바로크 코드만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바로크 정원의 탄생 배경에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바로크 시대 인물들이 있었다. 보 르 비콩트 정원으로 태양왕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던 재상 푸케는 그 연회를 빌미로 내쳐져 결국 종신형에 처해지게 된다. 루이 14세에게, 재상 푸케에게 정원은 어떤 의미였으며, 소피 왕비는 왜 헤렌하우젠 정원에 정성을 쏟았는지, 프리드리히 대왕이 쌍수시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정원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정원을 읽는 흥미를 더해준다.

“프랑스의 보 르 비콩트와 베르사이유 정원이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을 보면 절대군주체제가 확립된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대군주에게는 궁보다도 정원이 더 중요한 도구였었다. 왕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땅끝을 모른다는 것을 귀족들에게 과시해야 했으므로 문자 그대로 지평선까지 연결되는 정원을 만들었다. 건축이 가지는 한계를 자연이 보완해 주는 것이기도 했고 동시에 국왕이 자연까지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정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 밖으로 또 하나의 궁을 연장한 거였다.
어느 왕이 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본뜨고 싶지 않았겠는가?”(본문 38-39쪽)

유럽에 가서 무엇을 볼 것인가
유럽을 여행할 때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크 정원이다.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거나 그야말로 발에 채이는 것이 옛 교회나 궁인데, 거기에는 언제나 정원이 딸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바로크 정원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정원이고, 비엔나의 쉔부른,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 영국의 햄프턴 코트 팰리스 등도 낯익은 이름들이다. 특히 프랑스는 절대적으로 바로크 정원의 나라이다. 베르사이유 외에도 파리 중심부의 튈르리 공원, 소르본느 가의 룩셈부르크 정원 등 관광객으로 거치게 되는 코스에 놓여있는 정원들이 거의 다 바로크 정원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크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바로크 정원이라는 것을 알고 보는 경우는 드물다. 미술사조나 건축양식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두꺼운 여행서적에도 정원에 대한 설명은 간단명료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과연 바로크 정원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연들이 얽혀 있는지 알고난다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그림뿐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책이 선사하는 것은 ‘정원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이다!

차례:

왜 바로크 정원인가
가장 유럽정인 정원
‘유럽풍의 정원’이 뭐더라
반 종교개혁의 덤으로 태어난 바로크
정원 양식 구별하기
공간 혁명
왕실에서 왕실로 전해진 바로크 정원

공간의 마술사 앙드레 르 노트르
베르사이유의 정원사
튈르리 정원
수도원에서 기하학을 배우고 화가의 꿈을 꾸다
자수화단을 싫어한 르 노트르
퍼스펙티브 – 원근현상과의 씨름
운하의 비밀
르 노트르와 태양왕
묘비명

절대군주의 무대장치, 베르사이유
‘대운하 건설’과 1400개의 분수
오렌지 정원
태양왕
몰리에르와 보스케
상징과 암시 – 알레고리와 심볼
뒷이야기

푸케와 보 르 비콩트
두 개의 태양
아코디언처럼 정원을 접다
헤라클레스는 알고 있었다

소피 왕비와 헤렌하우젠
하노버라는 도시
정원 앙상블 – 헤렌하우젠
정원의 신데렐라 – 베르크 정원
겨울 왕과 소피 공주와 삼십년 전쟁
헤렌하우젠의 그로테
파르테르와 보스케
풀리지 않은 숙제

프리드리히 대왕과 쌍수시
근심 없는 곳
포도나무가 자라는 언덕 위의 내 작은 근심 없는 집
보물찾기

에필로그
바로크 코드
정원 이야기는 곧 사람 이야기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 13가지 이야기로 풀어본 조경이란 무엇인가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 13가지 이야기로 풀어본 조경이란 무엇인가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13가지 이야기로 풀어본 조경이란 무엇인가

도서출판 나무도시

“조경은 땅의, 생명의, 기억의, 관계의 예술이다.  자연과 문화가 대화하는, 삶의 예술이다.”

240면 / 무선제본 / 올컬러 / 152×225 / 9,000원

초판 1쇄: 2007년 10월 17일 출간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아파트 단지 내의 조경공간이 아파트 값을 결정하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선거철이 되면 다투어 공원 녹지 관련 공약을 내세운다. 덕분에 공장이 떠나간 자리에 공원이 들어서고, 쓰레기 매립장도 공원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대가 되었다. 쾌적하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삶의 터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진 탓이다.

그러나 살고 싶은 도시, 걷고 싶은 거리를 꿈꾸며 기꺼이 도시로 녹색을 초대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공원을 비롯한 외부공간을 창조하는 조경에 대한 인식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경(景)을 만드는(造) 것, 환경을 가꾸는 것, 공간과 시간을 매만지는 것, 삶의 토양을 건강하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 조경이건만, 이 복합적이며 통합적인 작업이 무슨 연유 때문인지 단순히 ‘나무 심기’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조경분야의 소통창구이자 매개 역할을 담당했던 월간 <환경과조경>의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이 책은, 그렇다면 조경이란 무엇인지, 조경의 특성과 매력은 과연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소개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조경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이 새로워져, 우리의 삶의 공간이 보다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특별한 구분 없이 13편의 원고가 실려 있지만, 이 책은 대략 네 개의 범주를 갖고 있다.

그 하나는 조경의 역사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원고가 이에 해당되는데, 고정희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풍경식 정원을 세로지르며 서양 조경 사백년사를 단숨에 훑어주었다. 조경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정원 양식의 변천을 이해하는데 있어, 그의 명쾌한 정리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이유직은 한국, 중국, 일본 전통정원의 특징을 간결하게 정리함으로써 동아시아 삼국의 조경 원류를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서양 정원과 다른 동양 정원에 담겨 있는 의미와 각기 다른 정원의 매력을 맛볼 수 있다.

두 번째 범주는 조경이란 행위와 과정이 생산해내는 구체적 결과물들이다.

정원은 앞선 두 편의 원고에서 비중 있게 소개되어 제외했고, 대표적인 조경공간인 공원과 광장, 가로, 골목길 등을 고찰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개별 대상을 살펴보기에 앞서, 주신하가 도시, 경관, 조경의 관련성에 대해 짚어 보았다. 그의 글은 ‘도시를 디자인하는 조경’이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본격적인 대상 고찰에 나선 최정민은 공원에 천착했다.

도시 문제의 해결이라는 과제를 안고 탄생한 공원의 변화와 전지구적 확산, 전형적인 공원 스타일에 대한 무비판적 복제, 새로운 공원 모델 제시를 위한 노력들을 꼼꼼하게 살펴본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은 결국 그림 같은 공원의 극복이 아닐 런지.

공원에 이어 다룬 것은 광장과 가로이다. 홍형순은 도시의 가로와 광장의 의미를 짚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길을 둘러싼 동서양의 다른 문화에 대해 들려준다. 가로와 광장, 골목과 마당의 차이를 음미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홍형순의 글에서 조금 언급되었던 골목길에 집중한 김연금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우리네 골목길의 정취와 풍경을, 기억의 저편에서 불러낸다. 골목길과 같은 완전히 사적이지도 백퍼센트 공적이지도 않은 잉여적 공간을 주 대상으로 삼는 조경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물음으로 마무리된 그의 글은, “아날로그적 정서, 사람 냄새, 인정, 생활의 공간, 다목적 공간, 사건 생성적 공간, 커뮤니티, 매개적 공간” 등등의 단어를 오래도록 떠올리게 한다(사실 지금의 조경은 공원, 정원, 광장, 가로와 같은 전통적 영역뿐만 아니라, 보다 복합적이며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는 대상지를 다루고 있지만, 책의 분량을 감안하여 부득이 공원과 같은 몇몇 대상지만 집중적으로 소개하였다).

세 번째 범주는 조경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흔히 조경은 종합과학예술이라고 칭해지는데, 이 책에서는 조경의 여러 특성 중 자연성, 예술성, 공공성에 초점을 맞췄다.

우선 박승진은 마천루와 같은 수직적 욕망이 꿈틀대는 이 도시에, “수평으로 번식하고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하며 자신의 희생을 통해 미래를 이어나가는” 자연의 가치가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자연을 미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자 조화로움을 일깨워주는 존재로 바라보길 권하고 있다. 그의 글은 “자연이 사라진 자리에 자연을 채우는” 조경가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조경을 삶의 예술이라 칭한 배정한은 눈에 띄는 몇몇 사례를 통해, “자연과 다른 예술과도 다른 조경”만의 매력을 전달코자 했다. “인간 삶의 터전이자 바탕인 땅을 보다 지혜롭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것이 조경의 목적”이란 구절로 시작되는 그의 조경에 대한 정의는, 이 책의 독자들이 곱씹어볼만 하다.

색다른 이력을 가진 필자인 이유주현에게 부탁한 것은 조경의 공공성이었다.

도시에서, 사회에서 조경공간이 가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무개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의 것이란 점이다. ‘개인의 정원’이 ‘모두의 공원’으로 바뀌게 된 과정과 공공성의 틀로 조경가의 역할을 바라본 그의 글은, 이 땅의 조경가들에게 “공공의 가치가 사적인 소유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고민하길 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네 번째 범주는 조경가의 역할과 조경의 재료에 대한 것이다. 조경에 과학과 예술의 특성이 모두 있듯이, 조경가에겐 작가와 코디네이터의 속성이 모두 있다고 파악한 성종상은, 자신이 직접 수행했던 작업을 예로 들어가며 다원화된 가치와 조화를 추구하는 이 시대에 더욱 부각되고 있는 ‘조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나 다양한 분야와의 협력이 필요한 외부공간의 조성에 있어, 통합적 사고는 주목을 요하는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이어서 ‘흙과 바람 사이의 모든 것’이란 근사한 제목으로 김아연이 다루고 있는 것은 조경의 재료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나무와 돌, 금속뿐만 아니라, 바람과 빛, 그림자와 소리처럼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들, 존재하지만 만져지지 않는 것들”도 조경의 재료라고 말하는 그는, 여러 가지 재료와 그 속성, 조합의 중요성을 찬찬히 설명한 후, 조경에서 왜 상상력이 요구되는지를 언급하며 글을 맺었다.

마지막은 구체적인 작품의 리뷰라 할 수 있다.

정욱주는 이전 시대와 구분되는 현대 조경설계의 주요 특징으로 “과거 어느 시대 보다 다양한 예술적 측면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과 대규모 스케일의 프로젝트들을 통해 “도시 구조 재편에 개입하는 적극성”을 꼽은 후, 주목해볼만한 해외 조경가와 작품에 대해 소개했다.

켄 스미스와 캐서린 구스타프슨, 피터 라츠의 작품들을 통해 동시대 조경이 일구어나가고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엿볼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남기준은 “지금, 여기의 조경”이란 글을 통해, 그동안 주목받은 현대 한국 조경 작품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글쓴이들

고정희_고정희조경설계연구소 소장

김아연_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김연금_커뮤니티 디자인센터

남기준_환경과조경

박승진_조경설계 서안 / studio loci 소장

배정한_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성종상_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이유주현_한겨레 기자

이유직_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정욱주_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주신하_서울여자대학교 원예조경학전공 교수

최정민_조경비평 봄 동인

홍형순_중부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

 

차례

첫 번째 이야기_서구 근대조경사 개관

서구 근대조경의 탄생과 변화_고정희

두 번째 이야기_한․중․일 전통정원 비교

동아시아 전통정원의 멋과 특징_이유직

세 번째 이야기_도시․경관에 대하여

도시를 디자인하는 조경_주신하

네 번째 이야기_공원에 대하여

그림 같은 공원의 시작과 변화 그리고 우리의 공원_최정민

다섯 번째 이야기_가로와 광장에 대하여

모든 길은 광장으로 통한다_홍형순

여섯 번째 이야기_골목길에 대하여

잉여의 공간, 골목길_김연금

일곱 번째 이야기_조경과 자연

조경의 영원한 로망, 자연_박승진

여덟 번째 이야기_조경과 예술

조경, 삶의 예술_배정한

아홉 번째 이야기_조경과 공공성

공공성의 실현이라는 가치_이유주현

열 번째 이야기_조경가의 역할

작가와 코디네이터의 경계에서_성종상

열한 번째 이야기_조경의 재료

흙과 바람 사이의 모든 것_김아연

열두 번째 이야기_해외 조경작품 리뷰

현대 조경의 지형도 엿보기_정욱주

열세 번째 이야기_국내 조경작품 리뷰

지금, 여기의 조경_남기준

 

신의 정원, 나의 천국 – 고정희의 중세 정원 이야기 1

신의 정원, 나의 천국 – 고정희의 중세 정원 이야기 1

고정희의 중세 정원 이야기 1

고정희 지음

도서출판 나무도시
343면 / 무선제본 / 올컬러 / 신국판 / 20,000원

201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천 년을 넘게 지탱한 수도원의 정원,
그리고 모험과 사랑이 충만했던
기사들과 시인들의 정원 속으로 떠나는 긴 시간 여행!”

이 책은……
타고난 정원 이야기꾼인 고정희 박사의 세 번째 정원 이야기! 전작이었던 “독일 정원”과 “바로크 정원”에 이어 “중세”를 택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 상징과 수수께끼로 가득 찬 중세 정원의 신비를 풀어가는 지적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한 점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파라다이스 정원”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 수도원 정원에 담겨 있는 상징과 역할은? 또 중세 전문가들이 아직까지도 그 비밀을 파헤치고 있는 성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이야기부터 로쿠스 아모에누스의 귀환에 이르기까지, 한 꺼풀씩 드러나는 중세 정원의 모습은 색다른 차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편, 르네상스 정원과 바로크 정원의 커다란 유산 때문에 실제 정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중세 정원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3년여 동안 유럽의 곳곳을 답사하고, 수많은 중세 문헌을 연구한 저자의 긴 시간 여행이 이끄는 곳은 중세 정원이면서 동시에 중세라는 시대이다. 때문에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던 중세가 결코 암흑의 시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중세 정원의 실체를 하나씩 추적해가는 저자의 노력은 긴 창을 옆구리에 끼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용감하게 돌진하는 늙은 기사처럼 무모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지적 탐구의 긴 여정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을 전해준다.

본문 중에서……
우리들이 지금도 조상신들의 존재를 어느 정도 믿고 존중하는 것처럼 중세 사람들은 신과 각종 악귀와 잡귀들의 존재를 믿었고 요정과 마법사를 믿었다. 세상에는 사람들과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공존한다고 믿었다. 하늘에 그리고 땅 밑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도 굳게 믿었다. 오로지 사람들이 사는 지상이 전부라고 믿고 있는 우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도 마찬가지였지만 중세 역시 마법으로 가득한 시대였다. 이런 다차원적인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상징의 힘을 빌어야 했었다. 그것이 그들이 알고 이해하던 세상이었다. 그런 그들의 세상을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면서 미신이 가득했고 미개했던 세상이라고 말 할 자신이 없다. 오히려 아직도 풀어내야 하는 수수께끼가 많은 신비한 세상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독자들에게 그 시대의 마법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전달해 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하고 인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덜 아름다워 보인다. 지금 지구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때문에 더욱 그러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증명할 수 없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깊은 세상을 독자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중세의 매력에 빠져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_ p.9

유럽 중세의 정원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수도원 정원, 파라다이스 정원, 장미 정원, 기쁨의 정원, 사랑의 정원, 비밀의 정원……. 하긴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만들어 낸 것이니 이름이 많을 수밖에.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이름들이 생긴 것은 중세의 정원이 다양하고 풍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럽 중세 정원의 실체는 단순했다. 위의 많은 이름 중 실제로 만들어진 정원은 수도원 정원과 기쁨의 정원뿐이었다. 중세 사람들에게 정원은 우선 ‘식물이 심겨있는 곳, 혹은 식물이 있는 곳‘이었다. 이 식물들은 대개 유용 식물들이었다. 아직 정원 디자인의 개념이란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정원이 감상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다. 유용한 식물을 심은 약초원, 채소밭, 과수원을 모두 정원이라 불렀고 자연경관 속에서 사람이 ’머물기에 좋은 곳‘이 있으면 이것도 정원이라고 불렀다. 정원은 유용한 곳이었고 머무는 곳이었다. 먼저 유용한 정원으로 시작되었다가 후에 머물기 좋은 곳이 되었고 머물기 좋은 곳을 의도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기쁨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유럽 정원의 출발이 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정원의 개념이 확연하게 두 방향으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위에서 본 실제 정원의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으로서의 정원이었다. 파라다이스 정원, 사랑의 정원, 비밀의 정원은 실제로 만들어진 정원이 아니고 상징으로만 존재했었다. 상징으로서의 정원은 또 다시 종교적 상징성과 문학적 상징성으로 나누어야 한다. 종교적인 것은 주로 그림으로 표현되었고, 문학 속에서 비로소 속세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속세의 그림은 이야기책의 삽도로 감추어져 있었다. 중세 때 가장 인기 있었던 장르는 영웅들의 무훈담과 기사들의 모험담이었다. 중세를 편의상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건국신화가 만들어졌던 전반부에는 영웅들의 무훈담이, 기사도가 형성되었던 후반부에는 기사들의 모험담이 노래로 불렸다. 이 노래들 속에서 많은 정원과 만나게 된다. 이 정원들은 장미정원, 비밀의 정원, 혹은 그저 정원이라고 불렸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였다. _ p.12~14

상징은 시대의 암호이다. 한 시대가 지나가면 상징도 함께 묻혀버리고 만다. 다음 시대의 사람들은 지나간 시대의 상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오랫동안 중세를 이해하지 못했다. 덕분에 중세는 암흑기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중세가 어두웠던 건, 밤을 밝힐 수 있는 것이 촛불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 촛불설 외에도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교회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서 세상이 어두웠다는 거였다. 다른 하나는 중세 초기에 대한 사료가 없어 시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 즉 dark ages라고 부른 것이다. 교회의 그림자가 깊었던 것도 맞고 사료 탐구가 어려운 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시대 전체가 암흑에 싸여 있었다고 믿는 것은 좀 가혹하다. _ p.21~22

중세의 정원은, 그리고 정원을 노래한 많은 글과 그림이 중세가 결코 어둠의 시대만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줄기차게 정원과 사랑을 노래했던 시대가 어두웠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기부터였다. 그리고 근세 초기가 되면 세상은 정말 어두웠다. 르네상스 예술의 불이 그리 환하게 타올랐던 것은 아마도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 스스로를 태웠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바로크 시대가 오자 역사에 그리 밝지 못한 사람들이 어두웠던 시대가 중세였다고 말했던 거다. _ p.22

 

차례……
프롤로그
중세의 정원, 에덴의 동쪽과 서쪽
중세의 파라다이스 정원은 마리아였다
기사와 시인들의 정원은 모험이었고 사랑이었다

Part1. 시대
1. 유럽의 중세는 어떤 시대였나
2. 중세의 시작
게르만족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다
민족 대이동
기독교의 전파
봉건제도가 시작되다
최초의 유럽인 카롤루스 대제
힘의 분배 – 황제와 교황
수도원과 수도회
“성자와 현자의 섬” 아일랜드
3. 중세 황금기
혁명의 시대
중세의 베스트셀러 – 아서 왕 전설과 니벨룽겐의 노래
기사도와 십자군 전쟁
교황청의 위기
4. 중세 말기 – 어둠의 시대
검은 죽음
백년전쟁 – 영국과 프랑스의 실질적인 탄생기
동방박사들이 가져 온 물음들 – 새 시대의 시작

Part2. 정원
1. 수도원 정원
떠도는 왕국 – 정원은 어디에
수도원과 속세의 관계는 정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치유의 정원
수도원 정원에 영향을 준 것들
2. 수도원 정원의 구조
실용 정원과 종교적 상징 정원
성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 중세적 도시 개발 계획의 청사진
약초원
중세 최초의 정원 디자이너 –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역할
3. 기사의 정원
잠자는 미녀의 정원
기사들의 삶과 정원과의 상관관계
중세 전반기의 기사문학 – 이야기 속의 정원
시로 보는 정원 – 로쿠스 아모에누스의 귀환
그림으로 보는 정원 – 정원이 사랑의 알레고리가 되다
비너스의 귀환 – 르네상스로 가는 길

에필로그
중세엔 튤립이 없었다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정원 왕국의 칼 대제, 푀르스터를 만나다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도서출판 나무도시

칼 푀르스터 지음 / 고정희 옮기고 엮음(편역)
304면 / 무선제본 / 2도 / 신국판 / 15,000원
ISBN 978-89-94452-23-4 03520 / 2013년 11월 25일 출간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꽃과 정원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독일 정원의 아버지’ 칼 푀르스터,
그의 일대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책은……
이 책은 “꽃의 제왕, 정원 왕국의 칼 대제,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1874~1970)가 생전에 썼던 27권의 책과 수백 편의 에세이, 수만 통의 편지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글을 선별하여 엮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의 사후에 미망인과 친지들이 뜻을 모아 그의 삶을 재구성하여 8년 만에 펴낸 책으로, 칼 푀르스터가 만 15세에 정원사 교육을 받기 시작하며 쓴 편지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인 96세에 쓴 글과 메모까지 긴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시기상으로 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글들이다. 그가 개발한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에 맞춰 그의 삶을 일곱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에 썼던 글과 편지를 실었다.
독일 역사 중에서 가장 파란이 많았던 격동의 세월을 보낸 칼 푀르스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정원을 가꾸고 정원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관된 삶을 살았다. 혼란을 피해 정원으로 숨어들었던 것이 아니라, 꽃의 아름다움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찾을 수 있다는 독특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신념을 평생 복음처럼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정원을 ‘처방’했다. 이 책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숙근초 육종을 포기하지 않고, 구술을 통해 새로운 정원 책을 집필한 정원형 인간의 구십 평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일곱 계절의 정원’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동안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가능하면 지구 전체를, 적어도 독일 땅 전체를 꽃으로 채우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소망이 투사되어 있다.

본문 중에서……
보르님 정원이라고 하면 대개는 이 선큰정원을 말한다. 사방에 마련된 계단을 따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문득 별천지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저 내 눈앞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이 꽃으로 둘러싸여 꽃 속에 들어앉은 형국이 되니 결국 세상 자체가 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선 꽃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마치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존재하여 그 별빛을 통해서 우주가 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듯, 지상에서는 나와 하늘, 즉 나와 빛의 근원 사이에 수없이 많은 꽃들이 존재하여 이 꽃들을 통해 세상에 빛이 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는 등식을 만드는 것이 칼 푀르스터의 의도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빛에 대해 유난히 민감하다는 점을 여러 대목에서 느낄 수 있다. 심지어 그는 빛과 색이 아름다운 생명으로 변신하여 나타난 ‘기적의 존재’가 꽃이라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선큰정원을 움푹 팬 커다란 방주로 여기고 하늘을 덮개로 파악한다면 선큰정원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세상이 되는 셈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물론 기적의 존재인 꽃들이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순간 인간들도 꽃이 되어 버린다. 꽃물이 들고 꽃향기가 배어 스스로 아름다워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세상에 다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도 꽃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칼 푀르스터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였으며 이렇게 세상을 꽃으로 채워 사람들에게 꽃물을 들이고 꽃향기에 적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이 하늘에서 받은 사명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_ 25쪽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숙근초들을 배식해 놓은 사례가 아직 드물다. 게다가 숙근초의 속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아직 많은 사람들이 겨울에도 나무처럼 바깥에서 월동시킬 수 있는 꽃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직 일년초와 반숙근초 등이 어지럽게 섞여 있어 꽃의 유형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어렵다. 나약한 구식 초화들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숙근초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점 많고 나약한 구식 초화들에서 비롯된 꽃에 대한 선입견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은 그동안의 노력에 의해 이미 극복된 지 오래이다. 물론 요즘에 와서 이 자연의 보물들이 보여주는 묘기에 대한 인식이 해마다 조금씩 커가고 있는 건 기쁜 일이다. 특히 정원 애호가들 세계에서 숙근초의 존재가 서서히 인지되어 가고 있다. 숙근초의 세계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나무와도 다르고 일년초와도 다르다. 그들은 마치 사람과 영혼의 교감을 이루겠다는 듯 다가오는 존재들이다. 봄에 싹이 터서 성장하고 꽃피고 스러졌다가 다시 깨어남을 반복하는 건 숙근초밖에 없다. 나무들은 겨울에도 꿋꿋하게 서 있지만 숙근초는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봄에 다시 싹이 트는 것이다. 연약해 보이지만 강건하고, 피로하게 시들었다가 소년의 신선함으로 다시 태어난다. 숙근초들이 보여주는 영웅적이고 열정적인 생명력과 생장성, 기적과 같은 적응력을 다른 식물 유형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원예가들이 내세우는 미적 기준을 이들보다 더 잘 맞춰주는 식물도 없다. 숙근초에겐 정원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원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별난 능력이 내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식물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비밀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들이다. 앞으로 공원과 정원에 이 보물들이 확실히 자리 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한편 숙근초를 통해 정원뿐 아니라 자연 경관에 대한 이해도 심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_ 115쪽

지은이 _ 칼 푀르스터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는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여 년 동안 포츠담 보르님에 머물며 숙근초 육성과 전시정원 조성, 글쓰기에 집중하여 총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었고 27권의 책을 집필했다.
정원 왕국의 칼 대제, 꽃의 제왕,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새로운 정원 문화의 확산이었다. 재배원에서 직접 육종한 숙근초들을 보급함과 동시에 글과 강연을 통해 이들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고, 재배원 부지에 자택을 짓고 전시정원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개방하였다. 정원사가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자신이 재배한 꽃을 바로 정원에 심어 자라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 역시 전례가 없었다. 새로운 꽃들의 육종, 그의 글과 사진 그리고 ‘실물’을 볼 수 있는 정원이 삼박자가 되어 정원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의 무대가 된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장이자 교육의 장소였으며 칼 푀르스터 자신에겐 연구소였다.
또한 칼 푀르스터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는 개념을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곱 계절의 정원이란 꽃뿐 아니라 억새나 수크령 같은 벼과식물부터 고사리까지, 그리고 당연히 꽃피는 수목들을 조합하여 초봄부터 늦가을, 겨울까지 ‘늘 피어 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각 계절마다 두어 가지 꽃을 심어 놓고 일곱 계절의 정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곱 번이건 칠백 번이건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곱 계절의 정원’은 ‘세상이 다 꽃으로 채워지는 그날’과 같은 뜻의 정원 프로그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칼 푀르스터의 보르님 정원은 정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옮기고 엮은이 _ 고정희
“칼 푀르스터 선생과 여러 달 씨름을 하다 보니 마치 그의 영혼 속에 허락 없이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오래 전에 발표되어 널리 알려진 글들이고 예전에도 여러 번 읽었던 글들인데 지금까지는 늘 건성으로 읽었었나 보다. 번역을 하다 보니 그의 숨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해독이 안 되는 글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슬쩍 넘어갈 수도 책을 덮어버릴 수도 없으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고,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영혼이 아플 정도였다. 문득 지금까지 내 삶의 여정에서 벌어진 여러 ‘우연’들이 왜 나를 자꾸만 칼 푀르스터 쪽으로 몰아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과정 때 설계사무실 FPB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거기 소장이 칼 푀르스터 재단 회장이었던 것도 그렇고, 지도 교수님이 재단의 이사였고 두 분이 동시에 추천해서 나도 이사가 되어 버린 것도 그렇다. 외국인을. 어쩌자고……. 당황스러웠지만 영광이었다. 그리고 학위 논문을 쓸 때 칼 푀르스터와 이십 년을 같이 일했던 함머바허 여사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던 것, 푀르스터의 딸 마리안네와 친구가 되어 십여 년을 절친하게 지냈던 것까지. 그러면서도 칼 푀르스터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게 되면 너무 깊은 우물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지금껏 슬슬 외곽을 맴돌았었다. 그의 글을 옮기면서 그의 우물에 깊이 빠져보니 ‘은하수에서 커피를 마시는’ 한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영혼 전체가 햇빛이 화사한 정원이었다.“

차례……

프롤로그_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신비주의자
칼 푀르스터
꽃을 통해 보는 세상, 보르님 선큰정원
칼 푀르스터의 정원 신학
칼 푀르스터의 후예들
푀르스터 가의 사람들
행복한 가족
삼부자 이야기
푀르스터 가의 여인들

1장. 초봄, 내 고향 천문대
어린왕자
베를린 천문대
내 고향 천문대
제3의 존재

2장. 봄, 길을 떠나 전력질주하다
슈베린에서의 정원사 교육
젊은 날의 기록(1)
슈베린에서의 2년 반
젊은 날의 기록(2)
젊은 시절의 요양 기간
젊은 날의 기록(3)
10년 동안의 유럽 종단
젊은 날의 기록(4)
베를린 베스트엔드, 숙근초 재배를 시작하다
푀르스터의 세계로 입문하는 열쇠
판과 프시케
신과 자연
포츠담 보르님에서
월동이 잘되고 오래 사는 꽃피는 숙근초란 무엇인가

3장. 초여름, 미래의 꽃피는 정원
『미래의 꽃피는 정원』과 『데미안』
신세대 정원에서 생명을 찾은 월동식물들, 숙근초, 관목, 덩굴식물 개요
구시대 정원과 신시대의 정원이란 무엇인가
꽃병에 대하여

여름
가을
겨울
제비고깔 찬가
제비고깔과 고딕 성당
파란빛 시간들
칼 푀르스터와 겨울
겨울 간조와 만조

4장. 한여름, 떠나라 머물러라
모든 떠남은 떠날 만한 것이다
이태리의 4월
기이한 결혼서약
결혼서약
아내에게, 딸에게(1)
무신론자의 기독교관
아내에게, 딸에게(2)

5장. 가을, 침묵을 깬 행복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으나 전쟁이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노란 정원
꽃과 열매는 그대의 귀향을 기다린다
위험한 세상
2차 세계대전 중의 편지와 기록
칠순잔치를 치르고 보낸 감사편지
자연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그림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동방 박사”에 대하여

6장. 늦가을, 존재함을 영원히 감사하다
칼 푀르스터 동무!
풀협죽도를 모르고 사는 인생
풀협죽도가 필 때면
작은 숙근초부터 우주의 별까지
벼과식물, 정원에 진출하다
고목
존재함을 영원히 감사함
칼 푀르스터와의 인터뷰
자기성찰
정열적인 노년의 나날들
수만 통의 편지들
노년의 기록

7장. 겨울, 늘 푸른 삶 ‘비타 셈페어비렌스’
겨울, 새로운 계절의 시작
신비 체험
잊지 못한 여행의 멜로디
무한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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